9년 전 고인이 된 시아버지는 나를 처음 만난 날 이후 일주일 만엔가 문자를 보냈다. 반가웠다면서 자주 만나자 하고는 ‘안녕 이상끝. 마침표.’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것 같은 그 마지막 단어, 이미 마침표를 찍었는데, 다시 마침표라는 단어를 쓰고는 또 마침표를 찍은 그 문자를 아직도 기억한다.
사망신고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의 호적등본에는 부, 모 자리가 모두 비어있었다. 남편에게 묻자 6.25 때 이북에서 내려왔다는 것 외에 본인도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하루하루를 참 열심히도 살았다. 학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그냥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며 교회 유치원 버스를 운전했다. 그 버스에 직접 타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아이들이 다 탔는지, 다 내렸는지 확인하고서야 시동을 껐을 거다. 우리가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하면 몇 시간 전부터 베란다를 서성였던 그 마음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만나는 누구에게나 웃었고, 말을 길게 하진 않았지만 헤어질 때면 “잘해.”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청주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는 같이 근처로 바람을 쐬러 갔지만 멀리 여행을 다녀온 적은 없다. 기껏 멀리 가봤자 대청댐, 청남대 정도였다. 여행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미 청주까지 내려온 우리가 너무 멀리 가면 힘들까 봐 그랬다고 한다. 그와 걷던 상당산성을, 무심천을 기억한다. 그는 청주가 처음인 내게 청주의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청주 토박이인줄만 알았다.
시아버지의 납골당에는 나와 우리 가족의 사진이 붙어있다. 시어머니는 내가 보내는 사진을 인화하고 코팅해서는 납골당에 갈 때마다 붙여놓는다. 그는 내 아이의 입학식도, 본인 큰아들의 결혼식도 가보지 못했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게 된 후 시어머니와 아주버님이 여행을 왔다. 모두 함께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찍은 사진도, 워싱턴 모뉴먼트 앞에서 찍은 사진도 납골당에 붙어있다. 우리는 그렇게 그가 없는 여행을 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아이에게 구체적인 할아버지와의 기억은 없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는 위암 수술 후 전이된 간암과 싸우고 있었고, 수술을 두 번인가 더 했지만 별 차도 없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몇 달을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병원에 갔다. 40킬로도 안 되는 그 앙상한 몸을 하고서도 그는 웃었다. 돌도 안된 내 아이에게 어깨를 두드리며 잘하라고 했다. 돌도 안 된 아이가 잘 할 수 있는 건 뭐였을까, 자라는 것? 그거라면 잘했다. 이제 열 살이 된 아이는 납골당에 가면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묻는다. 하늘나라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밥은 뭘 먹는지, 그리고 자기 아빠는 자기만큼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하다고, 대답 없는 그의 사진을 바라보며 묻는다.
언젠가 휴전선이 있던 자리를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된다면 내 아이와 함께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에 가고 싶다. 휴전선 윗쪽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내게 청주의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의 고향마을을 오랫동안 천천히 걷고 싶다. 그렇게 그가 오랫동안 갈 수 없었던 그곳에서 내 아이와 함께, 그가 올랐을 법한 뒷산을, 그가 고기를 잡았을 법한 시내를, 그가 따먹었을 법한 나무를 찾아보고는 그가 오랫동안 갈 수 없었던 그곳의 이야기를 그에게 전하고 싶다.
작은 에세이 공모전에 출품했고 수상하지 못한 글.
공모전 주제는 [미래에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이었다.
당연히 수상할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글을 다시 읽어본다. 얼마전 다른 공모전 도전을 위해 쓴 나의 다른 글을 보고 나의 글쓰기 싸부는 이렇게 말했다. 구수한 느낌이 나는 글이라고.
이 글을 제출한 공모전사이트에서 심사위원을 공개했는데, 그 심사위원은 감각적 에세이를 쓰는 요즘 에세이스트다. 내가 읽었던 그 분의 글을 생각하면, 나같아도 안 뽑을 것 같다. 이 생각을 왜 글을 제출할 땐 하지 못했던 걸까.
최근 도서관에서 반가운 한국책을 빌려왔는데, 에세이가 아니라 산문집이라고 부르던 시절의 책들이었다. 글쓰기 모임원들이, 나보고 반듯한 모범생이라고 했는데, 과연 나는 읽은대로 출력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글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TPO를 맞춰서 가려 내야 한다는 걸 느꼈다는게 하나의 수확이랄까? 매달 있는 공모전이니 전략을 다르게 세워봐야겠다. 수상작들을 더 깊이 읽어봐야겠다.
지금은 글쓰기 초보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써보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것도 생기고, 담길 그릇에 맞추는 요령도 생기겠지. 포기하고 싶진 않다.
정작 쓰고 있는 책의 원고는 며칠 째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마감일까지 글 갯수와 구석, 목차 조정해서 뽑아낼 수 없어서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도 못했다. 아... 올해 내에 원고 80프로 완성 및 투고,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