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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Mar 23. 2021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요즘 어린것들의사랑

적재 <별 보러 가자>를 듣고

글쓰기 모임에서 처음 제시된 에세이 주제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주제로 쓴 내 첫 에세이에는 내 첫 해외여행이 아주 짧게 언급되어 있다. 글을 퇴고하다가 그 여행이 20년 전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곧 죽어도 그 여행이 20년 전 일이라고 쓰기는 싫었다. 그래서 20대 초반이라고만 썼다. 



얼마 전 토크쇼에 출연한 이적은 자신이 꼰대일까 봐 두렵다고 했다. 후배들과의 모임을 단체 대화방에서 주최하고는, 만났을 때 이들이 정말 즐거운 걸까 한다는 그의 고민에 MC 김국진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꼰대가 아니라는 거라고 말했다. 같이 출연한 폴킴은 조용히 웃다가 이적이 없는 <비긴 어게인> 단체 대화방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얼결에 시인했다. 

https://youtu.be/kflXLzEbUf0


글쓰기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문화 평론가이자 작가인 정지우 작가도 이적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왜 그렇게 아재같이 구냐는 말을 듣는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posts/2825193871063101


그는 아재가 되지 않기 위해 내적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나는 그에게 ‘내적 싸움’을 멈추지 않는 한, 아재는 아니고 ‘오빠’ 일 거라고 위로의 댓글을 달았다. 그는 나보다 나이 어린, 글 잘 쓰는 ‘오빠’다. 문득 그가 얼마 전에 “세상의 모든 주제” 유튜브에 올린 <요즘 것들의 사랑> 편을 다시 보고 싶어 졌다. 

https://youtu.be/bRWKlik1Cus

정지우 작가가 지적한 대로 밀레니얼 세대는 너무 폭넓은 대상을 지칭한다. 나이 차이가 약 20년까지도 날 수 있는 세대다. 어르신들에겐 똑같이 요즘 것들이라고 불리지만, 단톡방은 따로 하나 파고 싶은, ‘어린’ 요즘 것들의 ‘러라밸’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적재의 <별 보러 가자>를 듣게 되었다. 

https://youtu.be/bpPstvQZXWo


<별 보러 가자>의 그는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나서 연락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하루 종일 생각하기에는 그들의 하루는 미래를 위해 준비할 일들의 목록이 빼곡하게 차 있다. 공부든, 일이든, 취업 스터디든, 아침부터 밤까지 열정을 하얗게 불태우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고서야 사랑하는 사람을 잠시 떠올린 것이다. 지금은 꼰대가 되어버린 라떼 오빠들이 어렸을 때는, 사랑이 삶의 전부였고, 그들은 모든 것이 변해가도 영원할 사랑을 약속했다. 


그러나 요즘 어린것들은 사랑을 위해 공부나 일을 내던지는 무모함을 선택할 수 없다. 풀코스 데이트를 준비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지금 어디냐고, 뭐하냐고 말을 꺼낸 후 집 앞으로 잠깐,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 나와줄 수 있냐고 묻는다. 바다로 떠날 수 없어서 잠시 밤하늘을 손 잡고 걸으며 별을 보는, 그런 데이트를 한다.


후렴구의 ‘멋진 별자리 이름을 모른다’는 용감한 고백에 뭐든지 다 알아야 했던, 그래서 모르면 아는 척을 했던 라떼 오빠들이 생각났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조이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입구부터 끝까지 돌면서 그림을 보고 데이트 때 할 말을 대사처럼 외운다. 진짜 데이트를 할 때 관람 순서를 반대로 돌았다는 게 함정이지만, 여자는 그런 조이를 귀엽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요즘 어린것들에게 이런 데이트는 말 그대로 ‘극혐’이 아닐까? 아니, 미술관을 끝까지 도는 시간 낭비를 하기 전에 조이에게 외운 걸 읊는 건 그만하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별 보러 가자> 가사는 너와 나의 걸음이 향하는 그곳이 어디일지 모르겠다고 하며 마무리된다. 그 끝이 결혼이 될지, 아닐지, 약속할 수 없는 요즘 어린것들의 사랑을 생각하다가 문득 슬퍼졌다. 그렇게 사랑과 밸런스를 맞추며 스펙을 쌓고, 자소설을 쓰고, 시험과 면접을 통과해 들어간 직장에서 그들은 하루 종일 꼰대들의 라떼 스토리를 들어야 한다. 친해졌나 싶으면 신조어 목록을 들고와서는 이건 안다고, 또 이건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요즘 어린것들은 친절하게 대답해주고는 꼰대를 빼고 다른 대화방을 개설한다. 가끔 꼰대가 있는 대화방에 꼰대를 꼰대라고 불러서 들통이 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살 수가 없다. 숨 쉴 곳을 잃어버린 요즘 어린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미래를, 사랑을 약속할 수 없는 요즘 어린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고도 사회에 관심이 없다고, 고전을 읽지 않는다고, 사랑도 낭만도 없이 스펙만 쌓는다고 ‘20대 개새끼론’에 언급되는 동네북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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