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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Jun 01. 2021

권금성에 남은 우리의 추억

공모전 낙선기념 포스팅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내 이름이 없는 당선작 발표란을 확인하는 것은 김빠지는 일이다. 그래도 이것또한 추억이려니 생각하고 낙선 기념 포스팅을 해보도록 한다.


“**아, 진짜 올라갈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저지 롱 원피스에 샌들 차림이었다. 이 차림으로 권금성 정상에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다음번을 기약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주일 후면 나와 아이는 박사과정 유학을 시작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케이블카를 한 번도 안 타본 아이를 위해 엄마는 설악산으로 향했다. 매표소에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꽤 오래 걸었기에 산 위에서 잠시 풍경을 내려다보고는 돌아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권금성 정상을 가리키며 올라가자고 했다. 잠시 산책하듯 걷는 것은 괜찮았지만, 네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아무 준비도 없이 암벽 등반이라니, 산을 타기도 전에 식은땀이 흘렀다.      

8월 말의 속초 여행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해가 쨍하게 비쳤지만 찌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평일이었기에 사람들 틈에 밀려다닐 일이 없었지만, 여름의 상큼한 분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 곳으로 속초를 택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산과 바다를 한 번에 즐길 수 있고, 대포항에서는 자연산 제철 생선으로 회와 물회를, 갯배 타는 곳에서는 아바이 순대를, 중앙부두에 가면 생선구이를 맛볼 수 있어 한국을 떠나기 전 온몸으로 한국의 추억을 담아가기엔 제격이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척산온천에서 목욕하고 올라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암벽등반을 하게 된 것이다.     

등산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산을 타게 되었다. 평소에 산은 쳐다보라고 있는 거라며 엄마가 등산을 갈 때도 집에서 배웅만 하던 나였기에 아이도 아이였지만 내가 이 산을 끝까지 오를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바위뿐인 산이었지만 중반까지는 갈만했다. 갑자기 가팔라진 산 정상을 쳐다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한동안 못 올지도 모를 한국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이렇게 미진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와 나는 샌들을 벗어서 한쪽에 벗어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등산복을 차려입은 등산객들 사이에서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맨발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마치 손에 자석이라도 붙은 양 바위를 잘도 탔다. 엄마가 아이 뒤를 따랐고, 나는 엄마를 따랐다. 바위를 오른 지 약 20분쯤 지났을까, 정상에 앉아 계시던 분들이 눈앞에 보였다. 아이는 꼭대기까지 올라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와 엄마도 서로를 쳐다보며 눈으로 뿌듯함을 교환했다. 정상에 잠시 앉아 살랑이는 바람을 느껴보았다. 그런데 내려갈 일이 막막했다. 손과 발에 땀이 났다는 게 그제야 느껴졌다. 아찔했다. 발이라도 헛디딘다면? 아이는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찼다. 그때 엄마가 아이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한테 업혀. 우리 신발 놓은 데 갈 때까지 할머니 등에 꼭 붙어있어. 할머니 목 꼭 붙잡고 있어야 해. 할 수 있겠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마의 등에 업혔다. 나는 엄마의 배낭을 등에, 내 가방은 앞으로 메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내려가는 내내 내 머릿속은 ‘떨어지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맨손과 맨발에 와닿는 바위의 촉감을 느끼며 조금씩 내려갔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잘 내려가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옆도 뒤도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손끝,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는 바들바들 떨면서 내려왔다. 

이 사진을 찍을 생각을 했던 나, 실행에 옮긴 나, 변태인가 초인인가...

벗어뒀던 신발을 신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바닥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제야 권금성이 눈에 들어왔다. 바위에 반사된 바삭한 햇살이 코끝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며 바다를 안은 속초시를 바라보았다. 그냥 가기 아쉬워 조금 더 걸어보았다. 시냇물이 보였다. 발만 담그겠다고 하던 아이는 어느새 물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렇게 늦여름의 속초가 우리 세 사람에게 스며들었다.     

벌써 미국에 산 지도 6년이나 되었다. 나의 SNS는 해마다 우리의 아찔했던 권금성에서의 추억을 보여준다. 권금성 정상에서 엄마와 나, 아이가 함께 웃고 있는 그 사진을 보며 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며 깔깔대던 아이의 웃음소리를, 아이를 업고 산을 타던 엄마의 모습을, 정상에서 느꼈던 코끝에 닿는 바삭한 햇살 냄새를 떠올린다. 어떤 해에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또 어떤 해에는 한국이 그리워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아이도 간혹 할머니와 함께했던 산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 가족에게 권금성의 추억은 오랫동안 마음 한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뽀로로 크록스를 신은, 권금성에서의 아이의 모습을 보니 너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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