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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Jun 02. 2021

다정함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정지우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읽고

전자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매일 페이스북을 통해 배달되던 그 글들이 모여 책이 되었으니 내용은 당연히 좋을거라 생각했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골라들고 계산을 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는 웹으로 봐도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 둘 올라오는 리뷰에서 표지에 대한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꼭 실물을 봐야한다고 했다. 마침 언니가 책을 보내줄까? 하고 물었고 나는 예의상 거절도 없이 응! 이라고 외쳤다.


정지우 작가를 알게 된 건 김민섭 작가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에세이 구독 서비스를 시작할 때였다. 그의 글은 소박하지만 투박하지는 않았다. 진지하지만 잔잔한 재미가 있었다. 읽고나면 자꾸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관심이 생긴 나는 그가 쓴 책을 더 찾아보았다. 철학 에세이 <분노사회>는 철학 에세이라고 써있었지만, 어찌보면 사회학, 또 어찌보면 의미학 소논문을 묶어놓은 듯 했다. 읽다보니 논문보다는 연재 칼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의 에세이를 먼저 읽고 이전 책을 찾아봐서인지 글의 온도차가 느껴졌다. <사람은 왜 도울까>는 근원적 철학질문인 사람의 본성, 그중에서도 이타심을 왜 가지게 되는지 다각도로 설명하는, 마치 대학 교양 필수 과목을 처음 가르치는 신임 강사가 강의를 하는듯한 책이었다. 


책마다 다른 온도차 때문에 그의 글이 더 궁금해졌다. 그러다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다. 여기선 고전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자신의 지적인 면에 취해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한 고전, 영화를 우리 삶과 연결지으려는 그의 시각이 나의 감정과 사고를, 사회현상을 보는 눈을 잔잔한 목소리로 해석해주는 것 같았다. 영화 ‘옥자’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으며 그동안 ‘옥자’를 보고 어떻게 고기를 먹을 수 있냐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채식을 해야하는게 마땅한 수순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에게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팟캐스트를 들으면 묘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작년 한국 방문 때 서점을 몇 군데 돌며 그의 책을 몇 권 사들고 왔다. 캐리어에 책을 자꾸만 추가하자 남편은 무게를 맞추려면 포기해야 할 게 있을거라고 말했다. 한국 방문에서 옷을 줄이고 책으로 가방을 가득 채워 온 것은 지난 방문 때가 처음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타이핑을 하며 필사를 해볼 작정이었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을 따라 쓰다보면 글이 늘겠지 싶었다. 그러다 글쓰기 모임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 이건 운명인가? 하며 재빨리 신청했고, 운좋게 합류할 수 있었다. 잰 척하며 설파하는 거룩한 복음 같은 글이 아니라 현실에 부딪히는 나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 그처럼 쓰지는 못하더라도 흉내나 내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들어가서 글쓰기의 스킬 대신 글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글쓰기 모임에서 사랑에 대한 책을 준비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어떤 글일까 기대감이 커졌다. 꽤나 꾸준히 포스팅을 하기에 내가 읽은 글들 중에서 과연 어떤 글들이 새 책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렸을지 궁금해졌다. 달달하기만 한 사탕 같은 사랑은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뜨겁게 타오르다 재가 되는 사랑은 더더욱 아닐 것 같았다. 그는 사람으로서 삶을, 자신을,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모아 사랑 애()세이로 묶어냈다. 읽으면서 다시 곱씹어보고 싶은 문장이 많아서 책이 온갖 색깔의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워졌다. 가장 와닿는 문장을 꼽으라면, 이 문장을 들고 싶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삶이 이성과 감정,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때때로 그중에서 삶을 ‘만들어내는’데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의지를 통해 알아가고 사랑하는 것들을 만들어나가면, 그것이 곧 삶이 되고, 삶의 의욕이 되고, 삶의 생명력이 된다.”

물론 그 ‘의지’만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헤쳐나갈 수는 없다. 바로 그 점에서 그의 글에 더 빠지게 된다. 


그는 하나의 관념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걸 잘 알고, 우리에게도 알려주려 한다. 그래서 다정함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얼마든지 쉽게 왜곡될 수 있는 말, ‘사랑’에 대한 고민에 너무 빠지지 말고 마음을 다해 주어진 나날들을 사랑하고자 애쓰자고 말한다. 그렇게 애쓰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향한 상냥한 호의를 베풀면, 어쩌면, 닫힌 사람의 마음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살자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에게 지금, 여기, 이순간을 살자고 말하지만, 되는대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꿈 한조각 쯤은 남겨둔 채로, 그 꿈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같이 살아내자고 얘기하는 듯하다.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기만 한 곳으로 그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슴 속에 날을 품고 전투하듯 살아야만하는 곳으로 그리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글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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