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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Mar 01. 2021

눈이 내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이라면, 당장 눈밭으로 뛰어가 눈싸움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아이들에게 눈은 뛰어놀 수 있는 기회다.


눈이 내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짝사랑중이라면, 내리는 눈이 첫눈이라면, 여름에 들였던 봉숭아물이 아직 남아있는지 손톱을 내려다 보게 될 것이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첫눈은 내 사랑이 이루어질 지의 여부를 알려주는 하늘의 계시다.


눈이 내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군인이라면, 한숨을 푹 내쉴 것이다. 

군인들에게 눈은 삽을 들고 치워내야 할 일거리다.


눈이 내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면, 내일 회사에 갈 다른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눈은 교통체증의 원인이다.


눈이 내린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에 핸드폰과 이메일을 주시하고 있다. 눈이 얼마나 올지, 이 눈이 폭설로 변할지가 내일 우리 모두의 하루를 결정하게 된다. 폭설경보가 내린다면 아이의 학교 휴교령이나 우리가 일하는 직장의 재택근무 여부가 통보될 것이다. 장을 보러 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 식재료와 생필품이 부족하지는 않은지도 확인해야 한다. 나에게 눈은 통제불가능한 일상의 예고다.


내가 지금 어떤 자리에 서있는지에 따라 눈이 다르게 다가오지만, ‘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낭만에 젖어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먼저 밟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눈사람을 만들어 이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낭만을 선물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처럼 잘 지내고 있냐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 사람의 안부를 물어야 할 것만 같다. 


사전에서는 눈을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라고 정의한다. 다른 기상현상과는 달리 눈이 우리에게 낭만과 기쁨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눈이 오면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진다. 건물도, 나무도, 하얀 옷을 껴입고 있어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온다. 눈이 많이 쌓이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집과 옆집의 경계선도, 도로와 인도의 구분도 없어지고 만다. 


눈이 오면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쌓인 눈을 밟으면 내가 매일 밟는 땅에서는 들을 수 없는 뽀드득 소리가 난다. 눈이 내리고 난 뒤 세상은 평소보다 고요해진다. 내 귀에 고요함이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눈이 오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눈이 내리는 동안 눈을 맞고, 내 발자국을 남기고, 조금있으면 사라질 그 눈을 즐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사람을 만드는 것도 눈이 온 이 순간의 기분을 조금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흔하지 않은 이날의 경험이 내 것이 되지 않게된다. 


아이의 학교는 결국 휴교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연락이 왔다. 신이나서 밖으로 달려가는 아이를 불러세워 장갑은 꼈는지, 모자는 썼는지 확인한다. 장화도 꺼내준다. 눈밭에서 뒹굴며 소위 ‘스노우 엔젤’을 만드는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다가 부엌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손을 비비며 집에 들어오면 분명 핫초코를 찾을텐데 우유는 있는지, 코코아 가루는 있는지, 마시멜로와 휩크림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눈밭에서 온 몸이 얼도록 놀고 들어와서 핫초코를 마시는 것 또한 눈이 내리면 해야 할 일의 일부이니까,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아직은 모르니까 말이다. 


나의 첫 투고 글. 끝내 실리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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