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wHereUs Mar 10. 2021

여행의 끝

14시간의 비행 끝에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다. 최종 목적지인 샬로츠빌 공항에 가려면 한 번 더 비행기를 갈아타고 두 시간쯤 가야 한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여행자들은 입국하는 첫 도시에서 입국 심사를 마쳐야 다음 여정을 완료할 수 있기에 환승 통로를 따라 입국심사장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같은 비행기에 있던 사람들이 손에 든 여권의 종류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 두 갈래 줄로 나뉘었다. 외국인인 나는 “Other passports”라는 팻말을 따라가 줄 끄트머리에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면서 ‘집에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14시간 전까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나라에 있었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유학생 서포트 모임에서도 방학 때 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어색한 감정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친구들을 본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집에 가니 내 방이 없어졌더라, 다른 누군가는 내 집에서 물 컵이, 휴지가 어디 있는지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게 어색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서 좋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기숙사가, 룸메이트와 함께 공유하는 작은 아파트의 내 방이, 타고 다니던 차가 그립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내가 여기 애틀랜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이미 한국으로 가기 전 짐을 모두 빼서 보관창고에 넣어두고 왔다. 일단은 친구 집에서 며칠 머물다가 워싱턴 부근의 에어비앤비로 옮길 예정이다. 물리적으로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시민권도 영주권도 없어 비자를 받아와 이민국 입국 심사를 거쳐야만 이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는 완벽한 이방인인 내가, 이 공항에서 집에 온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게 신기하고도 어색했다. 


 겨우 6년을 살았을 뿐인데, 내 인생의 반도 아니고 반의 반도 안 되는 시간을 머물렀을 뿐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의 첫 해외여행을 떠올렸다. 20대 초반 친구와 한 달 반 동안 유럽 전역을 돌며 여행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룩상부르그 공원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브라이튼 비치에 가서 흑맥주를 마시고, 쉴츠호른을 올라가는 여행의 순간순간마다 책이나 영화에서나 보고 듣던 바로 그곳에 내가 와 있다는 생각으로 벅찼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방을 나서며 내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머리에, 가슴에 꽉 채워가겠다는 마음으로 종일 돌아다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숙소로 돌아오면 늘 빳빳한, 풀 먹인 냄새가 나는, 바스락거리는 감촉의 침구와 정돈된 방이 나를 기다렸지만, 여행의 반절쯤이 지나가자 집에 가서 내 방에 눕고 싶었다. 그 때 그 여행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일기처럼 작성하던 노트의 맨 뒷장에는 집에 가면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엄마표 된장찌개, 할머니 표 고들빼기김치 등 ‘먹킷리스트’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건 우리 집 냉장고 정수기 물과 윗집 아주머니가 해주시던 따끈하고 바삭한 감자전이었다. 한 달 반 동안의 유럽 여행 중 나의 먹킷 리스트는 50개쯤 채워졌고 귀국 한 뒤 약 한 달에 걸쳐 ‘클리어’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도, 얼른 여행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나의 일상이 있는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관광객 티가 팍팍 나는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각국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는 것이 버킷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소망에 그치지 않고 ‘ㅇㅇㅇ에서 한 달/ 일 년 살기’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관광명소를 깃발 꽂듯 찍으며 하는 여행이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에서 나의 삶을 이어나간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런 경험 중에는 실수를 해도 괜찮다. 불편한 일도 어느 정도는 웃으며 넘길 수 있다. 이 모든 건 일상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설렘으로 덮을 수 있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니까.


남편이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자연스레 대학원생 기숙사에 있던 유학생 와이프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타지 생활을 배우자로 인해 시작했다는 동질감이 우리를 엮어주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나의 새로운 일상을 만들려는 나의 마음가짐은, 학위과정을 밟는 동안 긴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이들과는 완전히 섞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민을 와서 정착을 하신 분들과도 아주 깊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다. 삶의 터전을 옮겨와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하고 계신 분들에게 우리는 언젠가 졸업을 하면 이 작은 대학도시를 떠날 사람들일 뿐이었다. 미국에 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내가 꿈꾸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일을 시작하고, 몇 년 뒤 나도 학위과정을 밟으면서 딸려온 1인으로서가 아니라, 나도 이 곳에 섞여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장기체류자에서 거주자로 가는 관문을 하나쯤은 통과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갈 때는 생존에 필요한지의 여부를 따져가며 물건을 들였다면, 해가 지나갈수록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물건들, 이를테면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슬로 쿠커, 에어프라이어 등이 우리 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기숙사는 문을 닫고,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시작했지만, 유학생들 중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기숙사에 머물고 있던 학생들은, 여기가 너희들의 집(home)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는 안내 메일을 받았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그런데 그 ‘집’을 채우고 있던 우리의 살림살이들은 컨테이너 박스에 담겨 목적지와 배송일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어느 보관창고에서 우리를 마냥 기다리고 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여행’을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


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곳은 나와 남편, 아이, 이렇게 셋이 사는 곳, ‘우리 집’이다. 한국에선 부모님과 언니가 사는 집에 머물렀지만, 그 공간은 ‘우리 집’이 아니라 ‘엄마 아빠 집’ 혹은 ‘언니네’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던 서울 어딘가에 있던 아파트에도, 양가 부모님 집에도 우리가 ‘살던’ 흔적들은 없다. 다만 지난번 다녀갈 때 맡기거나 두고 간 물건들이 어딘가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국적을 바꾸려는 그 어떤 절차도 시작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얼마나 더 오래 살지, 아니 살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언젠가 이 곳을 떠나야 한다면 돌아갈 곳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나라 한국일지 아닐지 역시 미지수다. 나의 몸과 마음이 자리를 잡고 앉을, 내 삶의 터전이 미국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아직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 애틀랜타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나는 ‘객지’인 한국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곧 우리 살림살이를 풀어놓을 미국의 새 ‘집’을 찾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갈비구이도 해주고,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찜도 해 먹고, 여행 가방이 아닌 내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을 그 공간을 말이다.  이제야 왜 내가 여기 애틀랜타 공항에서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는 5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우리의 일상을 이어갈, 우리가 ‘사는 곳’으로 돌아왔다.


미국 살이 6년 차, 세 번째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의 기억. 글쓰기 모임에 제출한 나의 첫 글. 


이 글을 쓴지도 벌써 두 달쯤 되어간다. 그동안 우리의 새 '집'이 생겼다. 보관되어있던 짐도 받았고, 이 새 집을 '우리 집'으로 만드느라 몸살이 날 지경이지만, 참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