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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May 24. 2018

권리범위 좁은 특허의 가치

특허는 왜 필요한가

우리나라는 특허 강국이다. 매년 엄청나게 많은 수의 특허가 출원되고, 등록되고 있다.


특허는 권리범위가 중요하다. 그래서 권리범위를 결정하는 특허청구범위 작성은 무척 중요하고, 변리사는 어떻게 특허청구범위를 쓸지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특허명세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나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권리범위가 대폭 좁혀지는 일이 많다. 특허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권리범위를 좁혀야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권리범위가 좁다는 것은 특허권 회피가 쉽다는 것이다. 특허청구범위에 적힌 내용 중 일부만 바꾸거나 삭제하여 실시하면 해당 특허권을 쉽게 회피할 수 있다. 구성요소가 많은 특허일수록 더욱 회피는 쉬워진다. 바꾸거나 삭제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리범위가 좁은, 즉 회피가 쉬운 특허는 모두 특허로서의 효용가치가 없는 것일까?


특허를 만들어 내고, 특허가 활용되는 현장에서 실무를 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권리범위를 떠나 특허 자체가 가지는 역할과 가치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게 되었다.



기술문서로서의 역할    

특허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즉, 발명가의 머리 속에 숨겨져 있던 아이디어를 상세하게 글로 설명하고, 현재 존재하는 기술과 비교 분석하여 우수성을 뒷받침하는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면 특허 한 건을 출원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 이런 아이디어가 있어요”라고 말만 하는 것보다, “나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특허를 받았어요”라고 하는 것은 그 위상 자체가 다르다. 권리범위의 넓고 좁고는 그다음 문제이다.


즉, 발명가가 가진 기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출원되거나 등록된 특허는  키프리스(KIPRIS) 사이트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내용을 쉽게 공유할 수 있고, 기술 내용을 홍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케팅 도구로서의 역할

제품 광고에서 "특허받은 OOO", "특허 출원 중", "국제특허" 등의 문구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특허의 권리범위가 좁은지 넓은 지를 떠나 일반 사람들에게 특허 있는 제품이라고 하면 그 제품에 특별한 기술이 담겨 있고,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는 기술력이 있는 회사 같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품 개발자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노력했고, 그 결과물을 특허로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그래서 특허는 기술력을 홍보하는 마케팅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거래대상으로서의 역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디어 자체를 사고파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이디어를 잘 기록하여 노하우로 보관할 수도 있지만, 아이디어 자체나 노하우를 거래대상으로 하여 사고팔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특허를 출원하여 등록을 받아두면 특허권 양도가 가능하다.


특허의 거래는 특허청에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투명해질 수 있다. 기술이 필요한 사람 입장에서도 누군가의 머리 속에만 있거나, 노트에 적혀있는 아이디어를 큰돈을 주고 사기 쉽지 않다. 특허가 있다면, 특허를 거래대상으로 하면서 특허 소유자가 가진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안정성이 있어 보일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의 사업화 토대 구축  

사업적으로 정말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먼저 특허부터 받아 놓는 것이 좋다. 아이디어를 특허화하여 권리를 가지게 되면 기술문서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기술력을 홍보하기에 좋고, 투자를 받거나 대출을 받는 도구로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창업을 할 때 특허가 없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라고 하는데 특허도 없다면 어떤 투자자가 선뜻 나설 수 있을까? 실제로 IPO 상장 심사에서 기술력 평가는 해당 기업의 보유 특허를 위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방어 특허로서의 역할

특허를 내는 목적이 대개는 독점적인 특허권 확보라는 적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타인에게 권리 침해 주장을 받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목적인 경우도 있다.

 기존 기술에 비해 개량의 정도가 높지 않고 특허권을 받아도 효용가치가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특허를 내지 않고 있으면 동종 업계의 경쟁자가 같은 아이디어로 특허를 등록받아 권리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특허를 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허가 과정을 거치는 기술    

제약이나 의료기기와 같은 의료 관련 분야의 기술은 특허권을 획득하는 것 이외에 허가를 받아야만 기술의 상품화가 가능하다. 허가 과정에 투여되는 비용과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어떤 특허 기술이 특허의 회피가 조금 가능하더라도 임상시험과 허가 과정을 거쳐 제품의 출시까지 성공했다면 실질적으로 강력한 독점권이 만들어질 수 있다.


허가까지 받아 상용화가 된 기술의 특허를 회피하여 유사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새로이 허가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를 하려는 경쟁업자는 거의 없다. 차라리 그 특허의 존속기간이 만료되길 기다리거나, 무효심판을 통해 특허를 무효시켜 특허의 기술을 복제하는 것이 더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허의 본질은 청구범위에 기재된 권리범위를 토대로 특허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없던 기술이 처음 발명된 것이 아닌 이상 청구범위에 기재된 권리범위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회피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회피 가능한 특허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허를 등록해보았자 회피가 쉬운 것 같아 특허 출원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특허를 통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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