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족과 함께 종종 먹었던 태릉갈비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릉입구역 근처에 가보면 막상 갈빗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화랑대역 주변도 마찬가지다.
태릉갈비라는 간판을 건 집은 현재 경기도 별내 근처, 삼육대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태릉 근처가 아닌데 왜 '태릉갈비' 라고 하는 걸까?
왜 태릉 근처에는 태릉갈비 집이 없는 것일까?
태릉갈비의 역사를 파헤치기 위해
이 동네의 태릉갈비 집 중 가장 오래됐다는 집을 찾았다.
"제가 사장이 된 건 5월부터입니다."
예??? 전화로는 분명 40년 하셨다고….
"염 사장님이라고 오래 갈빗집을 해오신 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 이후로 사장도 여러 번 바뀌었어요.”
와장창… 태릉갈비의 전설 여기서 끝?
40년 전통 따위는 없었던 것인가…
허탈해하던 순간, 한 줄기 빛이 되는 한 마디.
"하지만 여기서 계속 일해주시는 고기 이모님이 계십니다. 염 사장님도 알고 계실 정도로 아주 오래 일하셨어요. 그분 덕분에 갈비 맛이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계속 찾아옵니다."
그렇게 현재 사장님으로부터 어렵게 소개받은 태릉갈비의 전설이자 레전드 고기 이모 님에게 태릉 갈비가 삼육대 근처로 자리 잡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INTERVIEW
태릉갈비는 7~8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조사해보니 오래된 집은 이 가게밖에 없네요?
그렇습니다. 이 집만 거의 40년이지, 다른 곳은 얼마 안 된 집들이에요.
주변에서 비슷한 시기에 다 같이 태릉갈비로 장사를 시작했는데 떠나가거나 사라졌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된 이야기인가요?
그건 여기가 아니라 육사 입구 근처에서 철거되기 전에 했던 갈빗집이에요. 그런데 그곳의 태릉갈비 일인자가 이 집이었습니다. 이 집에서 갈비로 돈을 엄청 버니까 옆에서 쌀장사하던 사람도 갈빗집을 차리고, 연탄장사 하던 사람도 하고 너도나도 갈빗집을 차리게 된 거죠. 하하
주변에서 일하신 분들은 왜 가게를 접었나요?
철거당해서 접은 사람도 있고 여기로 옮겨 일하다가 접은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연세가 다들 드셨거든요. 그 당시에 50에서 60살이 넘으신 분들은 다 돌아가셨어요.
갈빗집이 가업으로 이어지진 않았나요?
거의 없어요. 이정화 씨만 어머니가 하다가 물려받은 경우에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깃집은 힘들다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인가요?
아이들이 크니까 애들을 유학 보내면서 장사를 안 시키려고 했어요. 자기 자신은 없는 집안에서 자라 어쩔 수 없이 물려받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 직업을 물려주기가 싫었던 거죠.
태릉갈비라는 이름이 태릉 근처에서 시작해서 나온 게 맞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처음 태릉갈비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이정화 씨가 육사 입구 근처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근처가 태릉이라 태릉갈비가 되었어요. 불암산 태릉 내에서도 이 집이 가장 처음 생긴 곳이에요. 사장님만 바뀌었을 뿐이지, 태릉갈비 경력은 이 집이 가장 오래되었죠.
그렇다면 염 사장님이 태릉갈비를 처음 시작한 분이 아닌가요?
처음에 ‘이정화’라는 분이 태릉입구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재개발된 옛날 철길 다리에서 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장사하다가 202동 종점에서 두 번째로 하고, 202 종점에서 하다가 염 사장님에게 넘기고, 염 사장님도 그곳에서 지금 이 자리로 옮기게 된 것이죠. 그런 염 사장님도 지금은 장사를 안 하고 계십니다.
염 사장님이 가게를 넘겨받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정화씨가 하시던 가게가 갑작스럽게 철거를 당했습니다. 당시에는 야외에서 장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었는데, 배짱을 부리면서 계속 일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 영업취소가 되었고, 경기도 내에서 전경 500명, 포크레인 4개가 와서 가게를 다 밀어버렸어요. 그때 염 사장님은 마장동에서 고기를 대주던 사람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가게가 너무 아까웠던 거죠. 염 사장님이 너무 탐나서 외삼촌에게 빚을 지기까지 해서 이 가게를 사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자리는 이정화 사장이 마련해 준거나 마찬가지이죠.
태릉갈비는 태릉 주변에 있는 배를 갈아 넣어서 맛있더라는 소문이 있는데 맞나요?
배가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그것 하나만 갖고는 안됩니다. 그전까지 양념은 단순하게 들어갔는데 거기에 저는 제가 전달받은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고 배운 것을 합쳐 양념을 새로 조합했어요. 고기 양념을 제 식으로 조합하니까 고기를 굽고 오래 둬도 마르지 않았죠. 이게 이 집 태릉갈비의 비결입니다.
이모님의 경력은?
지금 74세인데 41세부터 나왔으니까, 만 33년 되었네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사업을 하던 집안이었는데 남편이 도박에 손을 대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었어요. 자식이 오 남매인데 학교에 보내려고 일을 시작했죠. 나는 원래 고생 없이 살았어요. 시골에 살았지만, 일꾼이 셋 있는 집에서 살았었죠. 하지만 사업 실패 후 애들을 가르치려다 보니 직업 현장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들게 되었네요.
무려 33년을 일하셨어요. 사장님도 여러 번 바뀌고 지금은 여유도 생기셨다고 했고.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사장님들도 인수 받을 때 이 쪽 계열(갈비)에서 일하려면 여러 군데 다니면서 고기 맛을 보곤 합니다. 다들 내 고기가 가장 맛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사장님 전에 계신 분들도, 그분들도 고기를 해달라고 했었지만 처음엔 안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때 했던 고기가 맛이 없으니까 다시 나를 불러서 해달라고 했죠. (실제로 현 사장은 전 사장에게 가게를 인수받을 때 고기 이모님만은 꼭 붙잡으라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정확히 33년 하셨다고 하셨는데, 오래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가정과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일했으니까, 몸은 힘들었지만 심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일을 하면서도 자식들이 잘 자라주어 힘들다는 생각을 못했네요 .
반대로 일하면서 보람 있거나 즐거울 때는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고기가 맛있다고 해 줄 때인 것 같아요. 옛날엔 고기가 맛있냐고 나가서 손님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는데, 좋은 반응이 오면 보람이 있어요. 그리고 작년부터 손님들이 인터넷에서 여기가 맛있다고 해서 왔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뿌듯한것같아요.
일 외적으로는 아이들이 결혼했을 때였습니다. 내가 이만큼 살면서 우리 애들을 결혼시키는 행복한 날도 오는구나 했죠.
전설의 고기 이모님은 유쾌하게 자신의 삶과 태릉갈비의 역사를 말했다. 고기 이모님의 자부심대로 다른 곳보다 유난히 더 맛있던 ‘태릉 숯불 갈비’ 의 태릉 갈비. 위치는 여기.
주요 메뉴 돼지갈비(250g) 12,000원 / 냉면 5,000원 / 잔치국수 \5,000원
위치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 215-47
전화번호 02-972-3335
글 김희란
사진 송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