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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막히는 이유 #3

그런 단어 없어요.

저번 글에서는 급한 마음에 키워드부터 지르다가 콩글리시가 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요. 단어 관련된 이야기 조금 더 해볼까 해요.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턱 막히면서 "아, 그 단어 뭐더라!" 하는 순간 누구나 겪지요. 어영부영 수습하던 아예 실패하건 간에 '단어가 부족해서 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어쩌면 그것도 고정관념 아닐까요?




그런 단어 없어요



Meeting이 기억이 안 난다면?


나는 내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팀원들이랑 회의가 있어서 다른 약속을 잡지 못해요. 오늘 갑자기 원어민인 상대방이 나한테 전화를 해서 오전 중에 방문하면 만날 수 있냐고 물어봐요. 내일 오전에는 회의가 있어서 오후에만 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meeting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요.


이미지 출처: pexels.com


많은 분들이 이럴 때 "Tomorrow morning, I..."까지 말한 후 괴로워하며 열심히 머릿속 한영사전을 뒤지게 됩니다. 바로 기억이 나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기억이 나지 않죠. 이제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대화를 포기한다. 둘째, 그 단어 없이 말한다. 보시다시피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단어 없이 말하기예요. 단어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아, 나 그거 알았었는데!' 라던지 '뭐였더라!'라는 느낌이 들겠지만 빠르게 포기하는 게 좋아요. 그때 느끼는 그 느낌은 단어 쪽지 시험지 앞에서 느끼는 그 느낌이에요. 어제 외웠건 오늘 밤에 기억이 날 예정이건 간에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을 거예요. 그 단어는 없다고 생각하고 상황을 해결하는 게 성공률이 더 높아요.


"I need to talk to my team tomorrow morning."이라고 돌려 말하던지, "I have another schedule."처럼 아예 다르게 표현하는 것도 좋아요. 아니면, 상대방에게 의지하는 방법도 있어요.


나: "I need to do something tomorrow."

걔: "What are you doing tomorrow?"

나: "Well, my team will sit together and talk about plans in the office."

걔: "Oh, you have a team meeting tomorrow."
나: "Yes."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서 그 단어가 나오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




그 단어, 원래 없던 거 아닐까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우리가 원래 없는 단어를 떠올리려 애쓰는 걸 수도 있다는 거예요.

오래 알아온 원어민이 갑자기 나한테 전화번호를 바꾸었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나는 이 번호를 계속 써왔어요. 그래서 "나 원래 이 번호 썼어."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갑자기 "원래"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요.


물론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원래=originally'라는 항목이 나오지만, origin=근원에서 파생된 단어로 지금 이 상황과는 맞지 않아요. 원래/原來라는 단어의 뜻과 영어 from the origin의 뜻은 정확히 일치합니다만, 현대 한국어에서 "원래"라는 단어가 원래 뜻과 조금 다르게 쓰이고 있지요. 이 상황에서 "I used this number."라는 문장 어딘가에 끼워 넣을 '원래'라는 단어는 원래 없어요. 영어에 그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요. "I originally used this number."라고 하면 어색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예전에는 그런 번호를 썼었어.'라는 의미가 됩니다. "I have always had this number."이라던지, "It's always been this."등으로 돌아가야 뜻이 제대로 표현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볼게요.

상대방: 오늘 왜 운동 안 갔어? 어디 아파?
나: 그냥, 귀찮아서.

이런 말을 할 상황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귀찮아서 운동을 가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마 "I didn't go to exercise because..."까지 만들 수 있어도 그 후에 아마 막힐 거예요. 본능적으로 '귀찮다'에 매칭 되는 형용사나 동사를 찾게 되는데, 그런 영어 단어는 없거든요. 굳이 한-영 번역을 해 보면 "I didnt' want to bother myself."가 될 순 있겠으나, 우리말의 '귀찮다'처럼 쉽게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에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원어민이라면 "그냥 안 갔어." / "I just didn't go."내지는 "오늘은 그냥 안 가고 싶었어." / "I just didn't want to go today."라고 말할 가능성이 커요.


효(孝)나 정(情) 같은 문화에서 비롯한 단어들, 불그스름하다, 불긋불긋하다 등 의태어나 의성어만 그런 게 아니에요. 역시, 어이없다, 눈치, 삽질, 대박 등 영어에 1:1로 매칭 되지 않는 단어들은 아주 많아요.

이미지 출처: pixabay.com



DO + 한자는 동사로


특히, 우리말 네이티브들은 한자문화권의 영향으로 한자 명사 사용에 익숙해요. 상의하다, 고민하다, 전화하다, 열거하다, 감탄하다 등 우리말의 많은 서술어가 '한자어 + 하다' 형태이다 보니 'do + 명사' 형태로 말하려다 그 명사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죠. "나 6시에 퇴근하고 친구 만날 거야."를 영어로 어떻게 만들까요? 여기에서 많은 분들이 "I will do _________ at 6pm and meet my friend."를 만든 후,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성공하신 분 없으실 거예요. "퇴근"이라는 명사는 없거든요. "I will leave work at 6pm and meet my friend."라던지 "After I finish work at 6pm, I am going to meet my friend."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올바른 동사를 선택하는 것이 답이죠.


명사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경우에도 위에서 보는 것처럼 마음속 한 칸에 딱 들어갈 단어가 부족하고, 그 칸을 채워 줄 단어를 찾다가 대화를 실패하게 되는데요. 대부분 품사와 음절 수, 그리고 나와 친한 정도까지 1:1로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를 찾아요. 우연과 coincidence라는 단어는 뜻은 같은데 음절수 (2개/4개), 그리고 친밀도가 차이가 많이 나겠지요. 이런 경우에 대부분 '그런 단어는 원래 없었다'는 점 한번 생각해 보시구요. 있더라도 그 순간 내가 바로 기억할 수 없다면 없다고 치는 게 낫다는 것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음 글에서는 그 괴로운 "어..."가 왜 나오는지 조금 자세히 풀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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