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 1
아이가 여섯 살 때,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안이는 스스로 샤워해?"
"너희 애들은 스스로 해? 아직 머리 감기 힘들지 않아? 거품도 제대로 못 씻고 나올 것 같고..."
"머리에 물만 묻히고 나올 때가 부지기수지.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둬. 그러다 언젠가는 잘하겠지.“
'띵~'
순간 내 머릿속엔 분명 종소리가 울렸다. 왜 지금껏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준에서 '완벽'하게 해낼 때까지 내가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립'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시행착오나 실패 없이 어찌 배움이 있고 자립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그동안 나는 아이가 스스로 설 기회, 실패할 권리를 빼앗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보정속옷 회사 스팽스의 CEO인 세라 블레이클리의 아버지는 어릴 적 항상 '오늘은 무슨 실패를 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날 실패한 것이 없다고 하면 매우 실망스러워하셨지만 반대로 "오늘 이것을 못하고 말았어요."라고 쭈뼛거리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훨씬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변호사를꿈꿨지만 두 차례나 시험에 낙방했고 영업사원으로 팩스 판매를 하며 수많은 거절을 당했지만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생계를 위해 다른 회사를 다니며 단돈 600만 원으로 시작한 그녀의 사업은 불과 3년 만에 연 12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2012년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바쁜 부모님 때문에 수없이 많은 실패의 기회를 얻었고 그 시행착오를 통해 일찍 자립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회복 탄력성’이 뛰어난 편인데 회복 탄력성이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김주환, 2011, 회복 탄력성)
그날부터 나는 아이에게 스스로 씻고 나오라고 했고 의외로 아이는 담담하게 알겠다고 했다. 물론 꽤 오랜 시간 아이의 머리에서 나는 쉰내를 감내해야 했지만 그 대가로 나는 실패를 바라볼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