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방과 후 수업 신청일이 다가왔다. 아이는 현재 학원을 다니지 않고 방과 후 수업만 두 과목하고 있다. 이 두 과목도 스스로 골랐고, 2분기 때는 한 과목 더 추가해달라고 한다.
왜 사교육을 시키지 않냐는 우려와 호기심 어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 아직은 다니고 싶은 학원이 없다고 한다. 1학년 때는 목공, 미술, 태권도 학원에 다녔었는데, 그 학원들 역시 스스로 골랐고 꾸준히 재미있게 다녔다. 그런데 2학년 때 전학을 왔고 딱히 다니고 싶은 학원이 없다고 한다.
둘째, 과거에 내가 해보고 좋았거나 못해봤거나 늦게 해서 아쉬웠던 것들을 권했다가 돈 쓰고 시간 쓰고 마음 상한 경험을 이미 수차례 했다. 남자아이들은 필수라고 해서 밀어붙인 축구 수업, 아빠의 로망으로 일찍 사 준 레고 및 무선 모형 자동차 등 아이의 흥미와 준비도를 고려하지 않고 시작한 것들은 부모에겐 실망을, 아이에겐 좌절을 안겨줄 뿐이었다.
셋째, 15년간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건, 아이들 마다 다른 발달의 적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준비가 된 아이는 쉽게 배우고 즐겁게 배운다. 그리고 제대로 배운다. 교사나 부모의 역할은 그때 딱 한 계단 더 올라갈 수 있는 디딤판이 되어주면 된다. 그 적기가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시기보다 느리긴 하다. 하지만, 나는 조급함을 누르고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그때가 오면 열심히, 꾸준히, 즐겁게 잘 해낼 것을 믿기 때문이다.
넷째, 나는 땅을 파고 뛰어놀고 게임하고 책을 보는 아이의 일과를 채우는 모든 것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경험들이 공부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택에 이사 온 후 아이는 페인트칠을 돕고, 잔디를 깎고, 읽지 못하는 영어 설명서를 펼쳐 들고 수영장 조립을 한다.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하는 이런 일들의 성취감이 공부를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섯째, 공부는 학창 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이가 평생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배움을 멈추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시작이 느리더라도 꾸준히 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으면 한다. 이것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달리다 초반에 힘을 다 빼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전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고 매일 집에 와서 스스로 정한 학습지 한 장과 읽을거리 하나씩을 읽는다. 선행은 하지 못하더라도 현행을 따라가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그리고 얼마 전엔 몇 년 간 권했지만 싫다고 했던 수영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키즈 수영장 말고 아빠와 배우고 싶다고 해서 몇 달간 2대 1 강습을 받기로 했다. 아이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내가 생각하는 사교육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