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값을 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있다는 건
"한동안 내 인생에 나는 없었어요." 차 한 모금을 더 마시고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좀 크고 나니 다시 나를 찾아가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찾지 못한 모습이 있는데, 20대 때의 나의 모습이에요. 이젠 그때처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쉽지도 않고 마냥 즐겁지 않아요." 아이의 베프 엄마이자 이제 나의 친구이기도 한 S의 말이다.
"나 역시 그래. 하지만 지금은 20대 때는 몰랐던 즐거움들을 알게 됐지. 다 나이에 맞는 즐거움이 있는 거 아닐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제 그때처럼 나의 민낯을 다 까고 보여주긴 쉽지 않더라. 그렇지만 나도 나이가 쌓여가며 주는 무게가 버거울 땐, 그런 날이 그립기도 해. 내일 걱정 안 하고 밤새 술 마시고 놀면서 허튼소리나 늘어놓던 20대의 내가 말이야."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떠오르는 친구들의 얼굴이 있다. 고로뎅, 윤양, 종호.
고로뎅과 종호는 사실 남편의 초중등 동창생이다. 남편과 내가 연애를 시작한 스물네 살 때 만났고 동갑내기라는 공통점 덕분에 우리는 자주 모이게 되었다. 후에 고로뎅이 윤양과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까지 우리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분명 남편의 친구들이었지만, 어느새 내게도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의 결혼, 아빠의 장례식, 남편과 헤어질뻔한 몇 번의 위기마다, 가장 먼저 달려와 조건 없는 위로와 축하를 건네주었고, "지금 간다." 한 마디에 방문해도 서로가 불편하지 않은 그런 사이.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로의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함께 하며 갈굼에 가까운 축하와 말없이 부딪치는 술잔에 위로를 담아냈던, 어쩌면 가족보다 솔직한 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줬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20년째 우리의 만남에는 별다른 변화나 진전이 없다. 여전히 애정을 빙자한 갈굼이 남발하고, 수없이 같은 추억을 안주 삼고, 영양가 없는 허튼소리를 지껄이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가볍디 가벼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텅 비어있던 마음속이 든든해짐을 느낀다.
새삼 ‘나이 값’을 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50대, 60대가 되어도 여전히 우리의 만남이 20대 그때 그 시절에 머물 것 같단 생각을 하니 푹한 안심마저 든다.
아마도 S를 다시 만나면 이렇게 말해줘야 할 것 같다. 20대 때의 나를 찾고 싶을 땐 그 시절의 친구를 만나 보라고. 그때의 나는 여전히 거기 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