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곤해서 엄마 입안에 염증이 생긴 거 같아.”
“그럼 나을 때까지 저한테 뽀뽀하면 안 돼요.”
“알지. 그럼 엄마 나을 때까진 조금만 이뻐야 해."
“그건 좀 어려워요. 엄만 내가 어떻게 해도 다 예쁘다고 하니까요.”
아이의 후한 평가와는 다르게 사실 나는 전보다 애쓰지 않고 있다. 나만의 틀에 가둔 엄마 노릇을 내려놓고 힘을 빼니 오히려 아이도 나도 훨씬 편안해진 느낌이다. 아이에겐 나를 억누르며 표현한 억지 사랑 아홉 번보다 그러다 터져버린 한 번의 화가 훨씬 더 강렬하게 각인되었고 그러고 나면 아홉 번의 노력은 처참하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노력하며 표현한 사랑이었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그저 '혼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힘을 빼고 나니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더 이상 참을 일이 없어졌다. 지금은 혼내는 횟수가 많아졌지만 잔잔하게 끓어오르다 화산처럼 폭발하지도 않고 아이 역시 수긍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루는 잠자리에 들기 전 '이제 그만 일어나 월터'라는 책을 읽어주며 주인공 월터가 소아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 우울증은 왜 걸리는 거예요?"
"사람마다 다른데 월터의 부모님은 사랑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월터는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아. 이 책 속의 아빠와 엄마는 시간을 내서 놀이공원도 가고 아쿠아리움도 가지만 항상 딴 곳을 보고 계시지? 엄마도 종종 그랬던 것 같아서 반성하게 되네. 혹시 엄마가 그래서 상처받았던 적이 있니?"
"아니. 엄만 맨날 주잖아."
"뭘?"
"사랑. 그거 나한테 맨날 많이 많이 주잖아."
여전히 혼을 내고 화도 내는 엄마지만 아마도 아이는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엄마가 주는 사랑이 '진짜'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