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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Sep 22. 2022

할로윈 행사를 제안합니다.

*공지*

꿈꾸당 동네 주민분들께 핼러윈 행사를 제안합니다.

일시: 10월 중 주말

행사 내용: 정자에 모여 보물찾기 후 집집마다 돌며 사탕 받기

준비물: 핼러윈 장식 및 코스튬, 사탕 바구니


지난달 인스타에 이렇게 공지를 올렸다. 주택단지에서 내가 교류하는 가정은 네 곳뿐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바로 두 분의 이웃이 연락을 주셨고 건너 건너 소식이 닿아 총 열한 가정이 모였다.


주택에 이사 와서 적당히 눈치도 살피며 적응이 필요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이웃과의 관계였다. 사람마다 원하는 거리와 경계가 다를 거라 생각했기에 먼저 손을 내미는 이웃을 제외하고는 가벼운 목례만 나누는 사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내가 용기를 내어(?) 총대를 멘 이유는 딱 하나. 아이들에게 즐거운 하루를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지난 3년간 10월마다 핼러윈 캠핑에 참여했다. '아이들의 즐거운 하루'를 위해 진심인 어른들의 열정과 그 열정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외국에서 건너온 기괴한 코스튬과 사탕 받는 날 정도로 생각했던 핼러윈에 대한 인식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축제가 단절된 채 지내던 이웃 사이에 다리를 놔주고 편안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축제에 모인 캠퍼들과 다르게 이웃과 함께하는 핼러윈은 서로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사 내용과 준비 사항을 간소화하고 나머지는 각 가정에게 자율권을 주기로 했다.


공지를 올리고 몇 주가 지난 어제 드디어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먼저 각자의 집 사진을 올리고 간략한 자기소개를 곁들인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조금 더 친밀해진 느낌이다. 초반엔 단톡방에 참여한 분들 모두 서로의 경계를 탐색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즐거운 하루'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조심스럽게 경계를 허물며 제안을 하고 그날에 대한 기대를 나누었다. 어쩌다 멘 총대에 약간의 부담도 있었는데 '완벽한 행사'가 아닌 이웃들의 '즐기려는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다. 거실 창을 열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형! 우리 핼러윈 행사하는 거 얘기 들었어? 앞집 누구도, 저 아랫집 누구도 다 같이 한대. 재밌겠지?"


"응. 나도 들었어. 너는 그날 무슨 분장할 거야?"


"아직 모르겠는데? 뭐 하지?"


"나는 공주 할 거야! 공주!"


"나는 사탕을 이만큼 받을 거야."


들떠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묵직했던 내 엉덩이도 덩달아 들썩인다. 아무쪼록 모두에게 행복한 기억이 되길 바라며 조용히 코스튬 사이트를 클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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