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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Oct 18. 2022

싸이월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한번 더 김치, 치즈, 스마일

사진 찍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나의 20대. 그나마 파파라치 같았던 구 남친이자 현 남편 덕분에 남아있는 사진마저도 대부분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린 사진들이다. 그땐 몰랐다. 젊을 때 내 모습을 그리워하고 꺼내보고 싶어질 줄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싸이월드 복원 소식을 들었다. 그나마 얼굴이 제대로 나온 나의 20대를 기록해 두었던 곳. 사이트가 폐쇄될 때조차 그날을 그리워하게 될 줄 모르고 따로 저장해 두지 않았었는데,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몇 주가 지나고 '000님의 사진첩이 복원되었습니다.' 라는 알람이 왔다. 원래 기억과 현실은 큰 갭이 있는 법. 흑역사를 마주하게 될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시절의 나는 참 젊고 예뻤다. 하지만 젊음만으로 빛나던 시절을 그땐 알지 못했다. 하루가 머다하고 고백을 받던 고교시절에도, 길 가다 사진이 찍히곤 했던 20대에도,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는 있는 그대로 충분히 예쁜 나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야 돌이켜보니 그 두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주목받던 '리즈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리즈 시절은 이대로 끝난 것일까? 이제는 낯설기까지 한 나의 과거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받아들이기 힘들어 외면하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이 이십여 년 후 너무 그리운 젊은 날일 수도 있겠구나.', '근데 셀카를 찍어본 게 언제였더라?' 구글 포토에 접속해 거슬러 올라가 보니 무려 3년이 지났다. 그렇다. 자연스럽게 나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고 그 때문인지, 그럴 때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급격한 외모의 변화를 경험했다. 체중과 흰머리, 주름이 급격하게 늘어가는 동안 피부의 탄력과 머리카락의 수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 후로 점점 거울을 보는 횟수가 줄었고 해 봤자 예뻐지지 않는 화장을 하지 않게 되었다. 차려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는 예쁜 옷들도 옷장 깊숙이 처박히게 되었고 드문드문하게나마 남아있던 사진 폴더에서 더 이상 내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


싸이월드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느덧 오늘의 나에게 던져졌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인 줄도 모르고 20대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고 있었구나.’  이상 기억력에도 의지할  없는 나이가  지금, 지난 3년간의 나의 모습은 기억에서도 사진에서도 찾을  없게 되었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네 사진을 찍은 게 언제야?" 친구는 대답했다. "누가 찍어주지 않으면 안 찍지. 애 낳고는 다 애들 사진뿐이야." 그러면서 내 눈엔 여전히 젊고 예쁜 그녀 역시 사진 속의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우리 그때 참 예뻤는데 모르고 지나간 것 같아. 그래도 사진으로나마 남겨두어서 다행이야. 그때 함께 갔던 공연과 전시, 맛집들도 사진이 없었다면 다 잊어버렸을 것 같아."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대답했다. "어쩜 그 몇 년이 내 20대의 전부였던 것 같아. 그리고 가끔 그 이후로 내 시간은 멈춘 느낌이 들어." 친구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고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려는 찰나 그녀가 말했다. "우리 그 멈춘 시간을 지금부터라도 기록하자. 지금 같다면 20년 후엔 다시 추억할 사진조차 남지 않을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용기를 내어 포즈를 취해본다. 셀카 모드로 나를 비추는 렌즈에 여전히 낯선 나이 든 여자의 얼굴이 비친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 어색하게 웃다가 '에라 모르겠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입을 벌려 한껏 웃어본다. "어차피 20년 후에 볼 거야. 자신감 있게 활짝 웃어. 지금은 늙어 보여도 그땐 초동안일 테니까. 깔깔깔" '찰칵' 카메라 셔터음에 맞추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오늘, 여전히 찬란한 순간, 세 번째 리즈 시절을 기록해본다. "친구야. 여길 봐. 우리 한번 더 김치, 치즈,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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