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김치, 치즈, 스마일
사진 찍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나의 20대. 그나마 파파라치 같았던 구 남친이자 현 남편 덕분에 남아있는 사진마저도 대부분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린 사진들이다. 그땐 몰랐다. 젊을 때 내 모습을 그리워하고 꺼내보고 싶어질 줄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싸이월드 복원 소식을 들었다. 그나마 얼굴이 제대로 나온 나의 20대를 기록해 두었던 곳. 사이트가 폐쇄될 때조차 그날을 그리워하게 될 줄 모르고 따로 저장해 두지 않았었는데,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몇 주가 지나고 '000님의 사진첩이 복원되었습니다.' 라는 알람이 왔다. 원래 기억과 현실은 큰 갭이 있는 법. 흑역사를 마주하게 될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시절의 나는 참 젊고 예뻤다. 하지만 젊음만으로 빛나던 시절을 그땐 알지 못했다. 하루가 머다하고 고백을 받던 고교시절에도, 길 가다 사진이 찍히곤 했던 20대에도,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는 있는 그대로 충분히 예쁜 나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야 돌이켜보니 그 두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주목받던 '리즈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리즈 시절은 이대로 끝난 것일까? 이제는 낯설기까지 한 나의 과거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받아들이기 힘들어 외면하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이 이십여 년 후 너무 그리운 젊은 날일 수도 있겠구나.', '근데 셀카를 찍어본 게 언제였더라?' 구글 포토에 접속해 거슬러 올라가 보니 무려 3년이 지났다. 그렇다. 자연스럽게 나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고 그 때문인지, 그럴 때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급격한 외모의 변화를 경험했다. 체중과 흰머리, 주름이 급격하게 늘어가는 동안 피부의 탄력과 머리카락의 수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 후로 점점 거울을 보는 횟수가 줄었고 해 봤자 예뻐지지 않는 화장을 하지 않게 되었다. 차려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는 예쁜 옷들도 옷장 깊숙이 처박히게 되었고 드문드문하게나마 남아있던 사진 폴더에서 더 이상 내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
싸이월드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느덧 오늘의 나에게 던져졌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인 줄도 모르고 20대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고 있었구나.’ 더 이상 기억력에도 의지할 수 없는 나이가 된 지금, 지난 3년간의 나의 모습은 기억에서도 사진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네 사진을 찍은 게 언제야?" 친구는 대답했다. "누가 찍어주지 않으면 안 찍지. 애 낳고는 다 애들 사진뿐이야." 그러면서 내 눈엔 여전히 젊고 예쁜 그녀 역시 사진 속의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우리 그때 참 예뻤는데 모르고 지나간 것 같아. 그래도 사진으로나마 남겨두어서 다행이야. 그때 함께 갔던 공연과 전시, 맛집들도 사진이 없었다면 다 잊어버렸을 것 같아."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대답했다. "어쩜 그 몇 년이 내 20대의 전부였던 것 같아. 그리고 가끔 그 이후로 내 시간은 멈춘 느낌이 들어." 친구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고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려는 찰나 그녀가 말했다. "우리 그 멈춘 시간을 지금부터라도 기록하자. 지금 같다면 20년 후엔 다시 추억할 사진조차 남지 않을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용기를 내어 포즈를 취해본다. 셀카 모드로 나를 비추는 렌즈에 여전히 낯선 나이 든 여자의 얼굴이 비친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 어색하게 웃다가 '에라 모르겠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입을 벌려 한껏 웃어본다. "어차피 20년 후에 볼 거야. 자신감 있게 활짝 웃어. 지금은 늙어 보여도 그땐 초동안일 테니까. 깔깔깔" '찰칵' 카메라 셔터음에 맞추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오늘, 여전히 찬란한 순간, 세 번째 리즈 시절을 기록해본다. "친구야. 여길 봐. 우리 한번 더 김치, 치즈,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