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려오세요! 제가 수저까지 다 놓았어요.”
열 살 아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끓인 라면 앞에 세 식구가 마주 앉은 일요일 저녁, 안온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있잖아. 엄만 지금 엄청 행복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앉아 먹는 이 라면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것 같아.”
“저도요.” (호로록. 호로록)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행복하게 살자.”
“네!”
내가 말하면서도 드라마 속 대사 같아 숨겨진 카메라라도 있나 두리번거릴 뻔했지만 그랬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만큼 행복했던 그런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남편이 다가와 말했다.
“여보, 당신은 너무 행복하면 좀 불안할 때 없어? 이게 현실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금방 깨져버릴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 말이야.”
아들과 나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남편도 그 순간 아마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나 보다.
식기 세척기에 대충 음식 잔여물을 털어낸 그릇을 옮겨 담으며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전혀. 무슨 일 생기면 그때 힘들면 되지 뭐 하러 미리 불안을 끌어다 써. 예방이 되는 것도,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닌데. “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지금 밸런스 나쁘지 않아. 내가 이럴 수 있는 건 모두 내 몫의 걱정까지 미리 해주는 그런 당신 덕분이거든? 그러니까 김걱정씨, 앞으로도 내 걱정까지 잘 부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