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을 것은 결국 느낌 뿐이다.
카우치 사용 전 선생님과 대면 상담이 진행되었다.
카우치를 쓰는 본격적인 정신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내담자가 분석에 맞는 사람인지, 분석에 맞는 사람이더라도 지금 치료자와 맞는 사람인지 등등
상담에 필요한 여러가지 것들을 가늠해 보는 시간인것 같았다.
그 상담도 쉽지는 않았다.
네 번째 세션이었나
그즈음 나는 휴가차 어머니에게 다녀왔었고
무심하게 한 주간 있었던 이야기를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1년여 만에 본 딸가족에게 듬성듬성 인사하시고
본인이 다녀온 나들이에 대한 소회를 잠깐 언급한 뒤
안방으로 들어가 누워 저녁때까지 나오지 않으셨다.
"분명 저를 보고 싶어 했을 것 같은데
여행 다녀온 직후라 그런지 혹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우신지 그런 표현을 안 하셔요.
평소에는 오너라 오너라 하시는데요."
조용히 듣고 계셨던 선생님은 문득
"나를 반가워 하는 느낌이 있나요?" 하셨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를 반가워 하는 느낌이라......?
!!!
그때 어머니의 말과 표정을 되살려 훑느라 정신이 없는데
선생님은 덧붙이셨다.
"우리가 믿을 것은 결국 느낌 밖에 없어요. 말은 지어낼 수도 있고 행동은 연기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를 속일 수 없는 것은 느낌이지요. 선생님도 아이를 보다보면 어떤 에너지가 들잖아요.
그간에 어찌 지냈는지 하는 관심, 마음 같은 것 , 나에게 에너지를 쏟는 느낌, 내가 어떤가 살피는 느낌 그런 것이 느껴졌어요?"
......
......
......
없었다.
그것이 없었다.
정말로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머리가 울리고 가슴이 내려앉는 듯 했다.
할머니가 오랜만에 손녀를 봤을 때 너무너무 반갑다는 느낌.
아버지가 긴 여행을 마치고 온 딸을 맞이할 때 싱글벙글 좋아하는 느낌.
그런 것들이 어머니에게는 없었다.
심지어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 표정도 미동도 없이 하고 계셨다.
겨우 대답 했다.
" 없는 것 같아요"
말하면서 목이 메여왔다.
나에게 없었던 것이 그것이었구나.
"없는 느낌을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면 그만큼 내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뜻이지요"라고 부연해 주셨다.
이것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평생동안 해오던 일일 것이었다.
한 번도 어머니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라면 당연한 일 아니던가.
어머니가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런 것들은 원래 본능 아니던가.
어미가 새끼를 기르는 심정 같은 것은 동물들에게도 당연한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명절 때 내려올 수 있냐는 물음은 그리움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상담을 끝내고 다음 세션 전까지 꼬박 일주일을 앓았다.
온몸이 아팠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근육통이었지만 감기를 앓을 때와 양상이 달랐다.
아프면서도 어머니가 내게 쏟는 에너지 같은 것을 찾기위해 기억을 뒤졌다.
이제서야 어렸을때의 일들이 같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7살 때 길을 잃고 헤매다 낯선 아저씨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재회했을 때, 그때 어머니의 귀찮은 일처리 하는듯 하던 표정.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쉬러 들렀을 때도 약속 있다며 나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같은 것들이었다.
문 선생님께서 나를 처음 봤을 때 했던 말씀도 생각이 났다.
' 어머니에게 받은 것이 없네요 '
아버지에게는 받은 게 있는데 어머니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이해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깨닫고 나서는 일주일을 미어지게 울었었다.
그래서 내 상태의 상당한 지분이 어머니에게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제공해야 하는 마땅한 돌봄이니 공감을, 먹고사느라 바빠서 잘 제공하지 못했다 정도로 이해했을 뿐
이런 류의 것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한 가지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우리가 믿을 것은 느낌밖에 없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우리가 느낌을 믿는다고??
느낌을 어떻게 믿나?
틀리면 어쩌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온몸의 통증을 견디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저 알았다.
이것이 답이겠다.
아마 이 치료가 내 인생의 실마리겠구나.
어쩌면 마침표일지도 모르겠다.
문 선생님을 끝으로 더 이상 갈 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아주 많이 남았으며
거기다 험해 보였다.
그 예감은 여지없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