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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Jun 30. 2022

엄마의 대피소

육아 전쟁

-너랑 안 놀아!!

-누나랑 안 놀아!!

-저리 가!

-하지 마!

-내 거야!(으아아 앙~)

-엄마~!!!


육아 전쟁엔 예고가 없다.

서로 놀다 점점 높아지는 소리에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내 신경이 곤두선다. 칼질을 하다 멈추고,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려고 하면 아들은 누나의 말을 먼저 들어준다고 한참을 서럽게 울고, 딸은 자기 맘을 몰라준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운다. 서로를 번갈아 가면서 안아줘도 자기를 먼저 무릎에 앉히지 않았다며 울고, 나의 말 한마디에 그칠 듯하다가도 싸움이 이어지며 또 운다. 결국 누구의 말도 안 들어주고 그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으면 서로 엄마 밉다고 목소리 높여 통곡하는 아이들.


바야흐로, 내 마음이 환장하는 시간이다.


그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하고 달래지만, 이미 터져버린 감정의 중심에 있는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을 알아 줄리가 없다. 오늘도 잘해보려고 한 엄마의 마음은 [더 이상 어쩌라고]의 상태가 되고야 만다. 무서운 눈빛으로, 더 낮은 목소리로 훈육한답시고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붙잡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좀 알아들었겠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저녁을 만들고 아이들을 불렀다. 딸이 다 차려진 밥상 앞에서


"이것 봐. 엄마는 이솔이만 좋아해! 맨날 내 마음은 몰라줘!!" 라며 나에게 눈을 흘기며 소리 지르고 작은 방으로 간다. 네모난 상을 펴고 밥과 반찬이 든 식판 두 개를 상에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았는데, 자기 옆이 아닌 동생 옆에 앉았다고 화가 난 모양이다. 까 온전히 감정이 풀리지 않아서 꼬인 마음이 이어진 것 같다.


작년부터 마음의 삐짐을 잘 표현하는 딸아이는 맘에 들지 않거나 나에게 뭔가 표현하고 싶을 때 작은 방으로 간 게 여러 번이다. 컴컴한 작은 방에 가서 불도 안 켜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자기가 화가 많이 났다는 표현이고, 얼른 들어와서 불 켜고 나를 안아서 마음의 서운함을 알아달라는 의미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달래주었는데, 오늘 나의 마음은 두 아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그렇게 쓸 정신이 남아있지 않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밥은 조금씩 식어가고 나는 한숨을 쉰다. 그런 딸과 나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코앞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는 아들이 있다. 정적을 깨는 건 아들이다.


"엄마, 나는 화 안 냈잖아~."라며 뺀질뺀질 웃어 보이는 아들은 자기는 누나와 다르다며 치킨 너겟을 입에 넣고 밥과 함께 야금야금 먹는다. 아들은 나에게 누나와 자기는 다르다고, 인정해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을 알지만 내 얼굴과 표정은 건조하다. 괜히 밥을 먹는 아들이 얄미운 마음까지 드는 속 좁은 엄마는 아들을 예쁘게 봐주질 못한다.


이럴 때 내 몸이 딱 두 개로 나눠지면 좋겠다. 하나는 딸 옆으로, 하나는 아들 옆으로, 그렇게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잘하고 싶지만 늘 부족한 것 같고, 나도 아이들도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만 같다.  마음이 아이들의 마음을 다 받아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이럴 땐 혼자 어디로 잠시만이라도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육아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온갖 힘든 마음들이 올라오다가 나는 아이들과 잠시 휴전을 하기로 했다.


"우리 서로 힘드니까 조금만 쉬자. 밥 지금 먹지 말자. 30분만 영상 보자."


그 와중에 텔레비전 보자는 나의 말을 듣고 컴컴한 방에서 쉽게 큰 아이가 나오고, 작은 아이는 눈치도 없이 오예~하며 환호성까지 지르며 소파에 점프해서 앉는다. 아이들이 밥보다 영상을 좋아하는건 세계 공통이라지만 [그렇게 쉽게 나올 거였으면 작은방에 처음부터 안 들어갔으면 더 좋았잖아]라고 딸에게 향한 마음의 볼멘소리가 올라오지만 삼킨다.


영상을 틀어주고 마음의 대피소로 왔다. 바로 아이들이 있는 거실 옆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내가 울어도 왜 엄마 눈이 빨갛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세수를 했다고 둘러댈 수 있고, 왜 안 나오냐고 아이들이 채근해도 배가 아프다고 말하며 시간을 벌 수도 있는 곳이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전쟁 같은 육아에서 집안의 화장실은 가끔씩 그럴듯한 대피소가 된다.


", 미치고 환장하겠네! 짜증 나 정말!!"

이제야 내 육성으로 마음을 뱉어본다. 거울을 보고 있는 나의 눈엔 초점이 없다. 머리는 헝클어져있고, 피부는 왜 이렇게 노랗게 떴지? 형편없다 정말.


엄마가 되고 나서, 육아에 지치는 것도 힘들지만, 거울 볼 때마다 나의 얼굴이 상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큼 또 속상한 것도 없다. 푸념과 함께 변기 뚜껑 의자 삼아 앉는다.


자연스럽게 몇 시간을 못 봤던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알림이 떠있다.

6년 전부터의 오늘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들. 매해 날짜에 맞춰서 따박따박 알려주는 구글의 사진과 영상들은 오늘의 현실세계와 다른 세계 같은 기분마저 든다. 화장실 들어오기 전에 꼴도 보기 싫다 생각한 마음이었는데, 너무나도 아기였던 신생아 시절의 사진들부터 작년의 사진까지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손가락으로 사진넘겨 본다.


딸이 11개월쯤, 일어나다가 넘어져 혀끝이 아랫니에 다쳐서 아무것도 못 먹고 응급실을 향해 가면서 혀 짧은 소리가 나진 않을까 걱정되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던 그 새벽 느꼈던 마음을 기억한다.

아들이 신생아 시절, 엉덩이에 딤플(엉덩이 위쪽에 콕 들어간 모양이 있는 부분)이 있어서 며칠밤을 못 자고 딤플의 영향을 검색하며 병원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몇 달을 기다려 서울대 어린이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 결과를 들을 때까지 얼마나 초조함을 가지고 밤잠이 설친 적이 많았는지를 내 마음이 기억했다.


그즈음의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그때 느끼고 기억했던 마음들이 생각나면서, 지금의  힘든 마음들을 위로해 주는것 같았다. 발음을 걱정했던 딸은 지금 나와의 말싸움을 정확하게 얄미운 말까지 참으로 잘하고 있고, 딤플과 고관절 탈구 의심으로 걸음걸이를 걱정했던 아들은 너무 신나게 소파에 뛰어올라서 영상을 보고 있다.

이런 육아의 기본인 잘 자라고 있는 기특함과 감사함이 드는 날에는 사실, 오늘의 전쟁 같은 육아의 힘든 마음은 무색하게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오늘 아이로 힘든 마음이, 과거 아이의 사진과 마음의 기억으로 회복됐다.

이제 대피소를 나가서 아이들 밥을 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5분 후에 밥 먹자~."


마음의 힘은 목소리에도 기운을 찾아준다.


 다시 식은 밥을 밥솥에 넣고, 따뜻한 밥 한 주걱을  다시 퍼서 식판에 담았다. 오늘은 밥으로 장난을 쳐도 봐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알림을 보내준 구글에 감사 편지라도 쓰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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