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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Jun 29. 2022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랬는데

질렸다.

"좀 쉬고 싶다."


친구와 통화하다 입 밖으로 마음의 소리가 삐져나왔다.


"아이들이 등원하고 올 때까지 남는 시간 동안 쉬면 되지 않아? 야, 초등학교 들어가 봐, 그 시간도 없다~"


나의 생활 패턴을 잘 모르는 친구는 큰아이가 학교 가면 빠른 하교로 내가 데리고 있을 시간이 많아질 거라고, 어서 유치원생이 주는 여유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니~라고 말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는 걸 기다렸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그 시간을 작년부터 뒤늦게 시작한 심리학과 공부를 하고 있고, 얼마전 부터는 욕심을 부려 교육을 받느라 시간을 쪼개 쓰고 있었다. 집안일을 썩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공부까지 한답시고 쉴 시간도 없이 지내고 있는 현실에 스스로가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엄마이면서 동시에 나로 살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가(어쩌면 욕심이) 나의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각오는 했지만 미취학 아이들 둘의 육아와 병행하는 게  생각보다 더 힘이 든 건 사실이었다.


-아. 나란 인간 정말. 왜 이렇게 사냐. 내가 내 발등을 찍는다.


몸과 마음이 힘들면 으레 시작되는 자기 비난과 자책의 말들이 습관적으로 튀어나온다.


물론 내가 좋아서 선택하고 시작한 일이다. 나의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했고 알고 있었다.

성취 지향적이고 나름의 성장 욕구가 많은 나는 관심 분야에 대해 배우는 걸 좋아하고 확실히 재밌었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재미와 즐거움의 열정이 몸이 지치고 마음이 괴로워질 때는 오히려 비난의 화살받이가 되기도 했다.  

열심히 시간을  쪼개서 강의와 과제, 시험까지 모두 다 끝냈고, 빠듯했던 교육일정도 오늘 끝났다. 아이들도 무사히 잘 먹고 잘 자고 있는 지금 이 시간, 나의 마음에 남은 건 뿌듯함도 성취감도 아니었다.


그 마음은 무기력이었다. 


무기력의 느낌은 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의지를 쥐어짜도 없는, [의지] 자체가 사라진 기분.

했던 일들의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미가 [순식간에 무의미한 일로 탈바꿈]해버린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하지 않은 감정의 늪.


한심했다. 이러려고 그렇게 힘들게 지낸 거니? 고작 이런 감정의 결과를 보겠다고?....


내면의 자책의 말들은 결과만을 본다. 그리고 멈출 기세가 없다. 오히려 더 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가고 감정이 격양되며 비난의 말을 보탠다.


마음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 길은 건너지 말아야 한다.

빨간 불이다. 마음의 위험 신호다.

의지를 가지고 방향을 돌려야 한다. 그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면 그 다음은 비난과 자책의 소용돌이로 빠져나오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안다.


감정의 흐름을 끊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노트 하나를 펼치고 영혼까지 끌어와서 자기 위로를 적어본다.


그래, 일정이 좀 빡빡하기도 했지.

그 사이 애들도 돌아가며 아팠잖아.

그리고 나는 주말에도 쉬는 날이 없었어.

이 또한 지나갈 거야. 그냥 견디면 되는 거지.

육아하면서 공부까지 하는데 당연히 힘들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에 미숙한 나는 한글로 적는 위로의 글자 하나하나에 어색함이 묻어난다. 몇 줄 적지도 않은 저 글들을 몇 번이고 스스로 소리 내면서 나의 귀에 읽어준다. 물론 바로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표정이 바뀌는 건 없다. 여전히 무표정이고 발음도 뭉그러진 채 나오는 목소리는 모깃소리로 나오지만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위로를( Self Talk ) 훈련하고 있다.


일종의 나만의 감정 훈련이다.

훈련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만큼 힘들고 의지를 갖고 스스로를 독려하고 위로하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힘이 들기 때문이다. 안 해본걸 한다는 건 정말 에너지가 소진되고 고된 일임이 분명하다.


후회와 자책하는 마음의 소리가 채찍질이 되어 삶의 여정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던 적이 많았다. 그런 점이 사회생활에서는 어느 정도 잘 통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감정의 길은 언제든 제한속도 없이 달릴 수 있는 뻥뻥 뚫린 고속도로가 되어 있다.


반면, 내가 나를 위로하는 감정의 길은 아주 풀이 많은 오솔길이다. 의도적으로 오솔길을 더 넓게 하는데 의지를 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훈련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그리고 몇 번 잘하는 듯하다가도 힘이 들면 옛말에,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 했다며 바뀌려고 하는 나의 의지를 식상한 합리화로 그만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질렸다. 그렇게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들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결과보다 과정을 보는 나로, 지금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 나에게 너그러워지기로 다시 결심할 수 밖에 없다. 그 의미있는 과정을 내가 잘 이겨내기를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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