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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Jul 07. 2022

하루를 죽였다.

생각의 홍수.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몸과 마음에 힘이 빠질 때가 종종 있다.

그때는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서 머릿속을 헤집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 조각들을 하나씩 잡고 찬찬히 살펴본다.


아침에 등원할 때 화를 낸 게 마음에 아직도 걸리는 건가,

오늘 비가 와서 괜히 마음이 이러나,

요즘 몸에 살이 쪄서 내가 스트레스받았나,

어제 남편의 행동이 속이 상했었나,


머리는 원인을 추측해 보지만 마음은 글쎄... 잡았던 조각들을 다시 놔주면서 동의하지 못한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원인을 찾지 못하고 답을 찾지 못한 찝찝한 마음이 들 때에는 뭔가를 행동하는 게 참 어렵다. 많은 자기 계발 책들은 그럴 때 몸을 움직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에 속한다. 이미 홍수가 나버린 머릿속의 생각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여전히 애쓰며 생각에 매달린다.


 생각의 홍수에 잠겨, 그렇게 하루가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뭔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게 잡히면 그대로 그 생각을 믿어버렸다. 그래야 지금의 기분이 납득이 되고, 나의 상태를 머리로 이해하는 척을 할 수 있다. 그제야 생각에 맞춰 마음이 움직여 행동이 나아갈 수 있는, 나는 머리형 인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듯 한것도 보이지 않는다.


출산하고부터였나, 언제부터였을까.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아마도 아이들 둘 다 기관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겠지. 정신없이 바쁘게 육아에 전념해 본 엄마는 정말 한 시간이라도 내 시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그런 엄마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을 마주한 나는, 상상했던 알차고 즐거운 계획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들에 갇혀서 마음을 보지 못하고 머리로 시간을 보내는 게 길어졌다.


물리적인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도,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 듯 했다. 엄마의 삶이 축적될수록, 아이들의 마음을 우선순위에 두면서, 오롯이 나의 마음을 보는 시간을 내질 못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마음을 내가 알 수 없게 돼버린 것 같았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다니, 참 모순이다.


답답해서 이런 마음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워킹맘 친구는 일을 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고민할 시간이 많아서 그런거라고 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는 자기와 증상이 똑같다고 병원 가서 도움을 받으라고 말한다. 또 다른 친구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일단 뭐든 하라고 나에게 독촉 아닌 독촉을 하기도 한다.


수시로 이런 나의 마음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른 진단을 받는다.

아마도 친구들은 나의 대한 사랑을 전제로, 내 사정이 안타까워하는 말이었겠지.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나는 친구들의 마음 조각들 중 믿고 싶었던 것을 하나 골라 마음에 갖다 붙여본다. 내 마음에 맞지 않다. 당연한 결과다.


 내 마음인데 다른 사람의 마음 조각이 맞을 리가 없잖아.


실소가 나온다. 답이 없는 생각을 오늘도 이렇게나 길게 하며 하루라는 시간을 죽였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나임이 명백한 이런 하루는 참 마음이 씁쓸하고 공허하다.


어쩔 수 없이 생각의 홍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아이들의 하원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때마침 하원 시간이 된 게 생각의 홍수에서 익사 직전의 나를 구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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