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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Aug 19. 2022

내일은 천사 엄마.

아이의 생일을 대하는 마음.

내일. 아들의 5생일이다.

아이들의 생일 전날 엄마인 나는, 그동안의 아이가 커온 과정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쉽게 잠들지 못한다.

 

침대 끄트머리 구석에서 자고 있는 아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휴대폰 후레시를 수면등 삼아, 자는 아이가 눈부시지 않을 만큼 멀찌감치 두고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조심히 다가가 아들 옆에 몸을 뉘어, 자고 있는 아들의 목 뒤에 팔베개를 해주며 아이를 안아본다.

보드라운 아이의 볼에 내 볼을 조심스레 비벼보고, 작은 손에 내 손을 포개어 잡아본다.


자고 있는 아이의 올망졸망한 눈, 코, 입과 얼굴에 비해 크지만 잘생긴 귀, 아빠가 잘라 까까머리가  머리카락과 저녁 누나와의 놀이에 사인펜으로 물들여진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본다.


'에휴. 오늘 저녁밥 좀 안 먹어도 뭐라고 하지 말걸.'


또래에 비해 왜소하고 키가 작은 아들에게 저녁시간 잔소리를 한 게 한숨과 함께 올라온다.


아직도 부족한 엄마는 내일 하루만큼은 화를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아이를 대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아들을 임신하고 28주였다. 정기검진을 받던 중 태동검사에서 진통 그래프가 확인되고 자궁 경부 길이가 짧아져 조산할 위험이 있다며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다. 난데없는 입원에 남편은 급하게 오후 연차를 내고 어린이집에 있는 딸아이를 하원 시켰고 딸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병원과 집을 오갔다.


일주일 뒤 퇴원했고 집에서의 조심조심 생활이 이틀이 지날 무렵,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잠시 몸을 움직인 것뿐인데 밤에 또 가진통이 시작됐다.


다음날, 느낌이 좋지 않아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태동검사에서 진통 그래프가 여러 번 산을 그리며 나타났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집에 오지 못하고 나는 그렇게 병원에서만 누워 지내는 두 달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급하게 시어머니가 전라도에서 올라오고, 3살 딸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뱃속 아이의 건강한 출산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딸아이가 더 눈에 밟혔다.

갑자기 양육자가 바뀌어 버린 상황에 딸아이가 혼란스러울까 봐 걱정되고, 나 없이 자지 못하는 딸아이가 울면서 잠들까 봐 걱정됐다. 내가 안아줄 수 없고, 옆에 있어줄 수 없는 게 속상했다.


샤워 금지. 운동 금지.

입원 침대에는 주의 푯말이 붙여졌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누워 지내야 한다고 했다. 경부 길이가 너무 짧아서 아이가  더 내려오면 무조건 분만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누워있지만 그 시간 동안 마음 편하게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새벽에 가진통이 걸려 허리에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오고 분만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다.

한번 출산을 해봐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간호사를 호출했다. 온 신경이 곤두서서 심호흡을 내쉬고 들이쉬다가 자궁수축 억제제의 양을 늘려 맞고, 약의 부작용으로 손떨림을 견뎌 가며 수시로 진통 체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입원해서도 뱃속 아이보다 누나를 신경 쓰느라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지난 나의 마음들이 올라오며 조산할 것 같은 불안감과 온전히 사랑으로 보살피지 못한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같이 느껴져 진통을 느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꼬박 두 달을 누워 지냈고, 진통이 걸려 분만실로 옮겨갈 위기 4번 정도의 고비를 넘겼다.

38주가 되어 아이의 폐 성숙 기간이 지나고, 언제나와도 괜찮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고 나서야 퇴원을 했다.


퇴원 후 십일쯤 더 지나고 누나와 아빠, 할머니와 개울가 물놀이를 하고 오던 더운 날.

자려고 누웠는데 가진통의 시간 간격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10일 만에 퇴원한 병원을 아이를 만나기 위해 다시 방문했다.


39주 3일. 3.12kg.

누나와 같은 날짜를 채우고 같은 몸무게로 아들은 세상에 나왔다. 조산기로 맘고생한 시간이 긴 만큼 그저 날짜를 다 채우고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하루였다.


누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나와서 신기했고, 제 날짜를 다 채운 것으로 몇 년 치의 효도를 한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건강하게 나와 기특했다.


아들은 신생아 때부터  급성 장염으로, 중이염의 고열로 3살 때는 고관절 탈구로, 4살 때는 발톱 수술로 여러 번  큰 병원을 오가며  엄마의 마음이 놀라고 심장이 쪼그라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많았다.


그런 아이가 내일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잔소리에 가려진 사랑의 마음이 아닌,

아이의 존재로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내일은 아이가 맘껏 느낄 수 있게 천사엄마로 하루를 꽉 차게 보내봐야겠다. 



출산 날의 초심을 되새기며, 내일 하루만큼은 온전히 아이의 존재로 기뻐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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