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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Jul 22. 2022

우당탕탕 설거지

식기세척기로는 안돼.

누군가 나에게 엄마의 마음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살림살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설거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릇들이 마주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의도적으로 힘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그릇들을 어떻게 쌓아 올리고 건조하는지, 물기가 남아있는 그릇들과 설거지 개수대의 주변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그것들로 그 엄마의 감정과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날이 있다. 마음이 소심하고 그런 날, 애먼 그릇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설거지를 하며 결혼 준비를 하면서 도자기 그릇을 좋아하는 내가 신혼살림으로 잘 깨지지 않는 게 최고라고 추천받은 코렐을 선택한 것에 대해 현명한 처사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 하원 후, 오늘도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7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게 되고 아이들을 바로 욕조로 오게 하고 물을 받는다. 아이 둘을 욕조에 담가놓고 머리를 먼저 감기고 거품 놀이를 하라고 한 후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바삐 차려본다.


오늘은 미니 돈가스를 튀기고 딸이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와 입이 짧은 아들을 반쯤 키워낸 조미김과 어제 끓여둔 소고기 미역국이다. 5대 영양소에 맞는 영양식을 주고 싶지만, 내가 버거웠다. 막상 해서 주면 그것들을 다 먹는 것도 아니어서 힘이 빠지기 일쑤였다. 그냥 적당히 인스턴트와 직접 끓인 국이나 반찬 한 두 개로 내적 합의를 봤다. 처음엔 인스턴트를 먹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을 오래도록 힘들게도 했지만... 결국 내가 못하는 부분이니 뭐, 어쩔 수 없다로 나를 수용하고 반찬가게의 반찬과 적절히 섞여 먹인다.


미니 돈가스와 달걀 프라이와 뜨거운 국을 식판에 담는다.

국을 식히는 동안 나는 다시 욕실로 간다. 한 명씩 나오라고 하지만 이미 거품 놀이에 한창인 아이들은 목욕을 시작한 지 40분이 지났지만 나올 기미가 없다.


나와서 씻고 밥 먹자~


라고 좋게 이야기하다가 같은 말이 5번 정도 넘어갈 때쯤 나의 입은 인공지능 로봇처럼 말을 되풀이한다. 로봇이 된 나의 목소리에 서로 눈치를 보더니 오늘은 아들이 먼저 나올 자세를 취한다. 그래도 오늘은 선방했다. 나오라고 내가 화도 내지 않았고, 둘 다 울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평소보다 짧은 실랑이를 한 목욕 시간의 마무리에 엄마인 나의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오늘은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나오는 순서대로 빠르게 샤워기로 아이들 몸을 물로 헹구고 드라이의 코드를 재빨리 콘센트에 꼽고 머리를 말린다. 얼마 전 아빠가 머리를 잘라준 아들은 (정말 군대 가는 사람같이 자른 앞모습에 놀는데, 뒤통수를 보고 더 놀랬다) 드라이로 말릴 것도 별로 없어서 편했지만, 라푼젤이 되겠다는 딸의 머리는 벌써 허리까지 길었다.

게다가 머리숱도 많아 말리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말릴 때마다 한 번씩 내가 더운 바람에 말리기 안 불편해? 잘라볼까?라고 자르자는 의도로 떠보지만 라푼젤이 되고 싶은 7세 딸아이는 단번에 싫다고 말한다. 라푼젤이 되려면 아직도 엉덩이를 지나 무릎 뒤까지도 넘게 길어야 한다나.


머리를 말리는 동안 습하고 더운 오늘의 날씨와 드라이와 욕실의 남은 열기가 더해져 내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두 아이의 목욕 시간은 나의 체력을 순식간에 바닥으로 만드는데 선수다. 욕실을 마무리하고 거실에 모두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어째 애들 숟가락질하는 것을 보니 별로 배가 안고픈 모양새다.


오늘도 아들은 밥보다는 장난감을 찾고 만지며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딸아이는 동생의 그런 모습이 허용되는 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고자질하기 바쁘고, 역시 밥에는 관심이 없다. 엄마인 나는 올라오는 스스로의 감정에 말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목욕시간까지는 꽤 희망적이었었는데) 오늘도 역시 내 감정에 내가 말렸다. 여지없이 밥상머리에서 잔소리가 시작되고, 목구멍에서 큰소리가 나온다.

아이들과의 설득, 협박, 회유의 다양한 방법이 통하질 않고, 그런 시간이 지나 식판의 잔반이 반 이상 그대로 있는 오늘 같은 날. 내 맘에서 천둥번개가 친다.


아마 아까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구들이 먹던 간식을 나눠먹어서겠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니다. 반도 먹지 않는 식판을 엄마의 성적표처럼 받아들인다. 이 정도 남긴 거면 거의 낙제 수준 아닌가.

한두 번 있던 일도 아닌데 유독 오늘. 나도 모르게 화가 치민다. 식사 시간이 1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의 시간은 의미가 없기에 일어나 아이들을 장난감 방으로 보내고 식판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식판을 그대로 남은 잔반과 함께 싱크대에 내동댕이를 쳤다. 우당탕탕~쌓여있던 설거지 더미에 부딪쳐 소리가 크게 울렸다. 뭐 하나는 깨져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미치겠는걸.


눈앞의 식판을 쳐다보다 맨손으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여간해서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지 않는 성격인 내가 식판의 내동댕이와 함께 설거지를 했다는 것은 내 입으로 나올 것 같은 아이들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을 더해 불같은 화로 둔갑하는 잔소리 폭탄에 불을 붙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쌓인 설거지 산더미에서 그릇들을 하나씩 집어 들고 빡빡 씻는 소리가 아주 시끄럽고 요란하다. 아마 아이들은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지만 평소와 다른 그릇들의 소음으로 화난 것을 눈치챘으리라. 유년시절, 친정엄마의 큰 설거지 소리에 눈치를 봤던 것처럼 아이들도 나의 눈치를 볼 거라는 것을 안다. 아이들의 그 마음까지 다 알지만, 그래도 그런 눈치가 아이들에게 직접 보이는 불같은 화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아이들에게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고 깨지지 않을 프라이팬 같은 것을 마구마구 개수대의 벽을 부딪혀가며 설거지를 했다.


그릇들을 헹구면서 내 마음의 감정 찌꺼기들도 하수구로 같이 떠내려가길 바랐다.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거름망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내 마음의 감정 쓰레기도 같이 버려지길 바랐다.

행주로 싱크대 주변을  물기 없이 깨끗하게 훔치면서 나의 마음도 다시 깨끗하고 맑아지길 바랐다.


개수대에 담긴 설거지를 다 끝내고 나니, 마음의 천둥 번개는 다행히 수그러들어 있었다.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의미 없는 화를 내기보다는 그릇을 하나쯤을 깨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다 들인다는 이모님이라고 불리는 식기세척기로는 절대 못 느끼는 설거지의 참 맛을 앞으로도 종종 느끼면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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