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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May 17. 2022

당신은 어떤 '엄마'인가요?

'엄마'라는 이름표를 얻고 나서.

6남매의 막내. 전라도의 시골마을.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 내성적인 아이. 상대적 무관심.


학교에서 돌아와도 집에서는 나 혼자였고, 언니들과 오빠가 학교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에 내가 받아온 상장을 들고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그런 기대를 하고 일에 치여 밤늦게 들어오는 부모님께 자랑했지만 싸늘한 반응에 상처받은 나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니 지금 생각해 봐도 인정과 사랑이 참 아쉬운 나의 어린 시절이다.


사랑이 고픈 어린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야 상처를 받을 일도 없으니까.


그런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의 과정을 겪는 동안 내면에 '엄마'라는 색깔은 선명했다.


따뜻한 엄마,

옆에서 지지해 주고 표현을 잘해 주는 엄마.

언제든 아이가 감정을 편하게 말하는 안전 기지가 되고 싶었다.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나처럼 상처받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하고 싸우면 그 속상한 감정도 함께 나누고 싶었고, 잘 한일이 있으면 손뼉 치며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고 싶었다. 함께 살면서 웃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라면 누구라도 가졌을 만한 평범한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딸과의 육아에서는 그런 방향성이 너무나도 잘 맞았고 감정 소통과 의사소통, 친밀한 대화법 그 안에서 나만의 육아 만족도도 날로 날로 상승곡선을 그려갔다.


하지만 문제는 아들과의 육아가 시작되고부터였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딸과 놀이터를 갔을 때 만났던 아들 엄마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었다.


-왜 저렇게 무뚝뚝하고 무섭게 말하는 거야?

-과정을 왜 설명하지 않고 명령부터 하지?

-애들도 말하면 다 아는데 왜 화부터 내는 거지?


세상에나. 나의 오만함에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고 싶을 판이다. 아들 키워보지 않은 자 말하지 말라고 했든가. 그때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말들이 다 칼날처럼 아프고 차갑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주는 마음의 상처가 1mm씩 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상처보다 사실 나에게 실망스러웠다.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고 소망했던 '마음의 안전 기지'가 되고자 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닌 그저 윽박지르고 명령하고 단호하게 요구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전 기지 운운했던 엄마는 어디 가고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나 싶어서 뻔뻔하고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내 스스로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습, 나는 나 스스로를 비난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내 스스로가 그늘진 어둠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던 때가... 그렇게 나의 얼굴은 웃음을 잃어가고 집에서 아이를 재우고 나서 스스로의 감옥에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


감옥의 주인 온전히 나 혼자였다. 마음의 감옥 그 안에서는 그날의 잘못된 점 하나, 하나를 다시 끄집어낸다. 검열하고 비난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련의 반복된 과정들 속에서 나의 마음은 더 나를 못된 엄마로 낙인찍었고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엄마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런 짜증과 훈육의 일상이 반복되던 날 중 어느 날.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왜 좋아?


-그냥 좋아. 다 좋아. 너무 좋아.

딸이 말했다.


그리고 누나에 이어 동생인 아들이 말했다.

-맞아 맞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유를 찾지도, 찾을 이유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나오는 자연스러운 그 아이들의 말에 나는 얼음이 되었다. 코가 시큰거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 울컥하고 먹먹한 마음을 붙잡고 울음을 참고 겨우겨우 아이들을 잠재우고 나왔다.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은 온전히 나 혼자였다. 육후, 감옥의 수감자였던 나는, 현실에서도 수감자 옷을 벗지 못하고 일상을 감옥처럼 생활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며 점점 웃음과 눈빛에 초점을 잃어가는 나를 돌보지도 못하고 아이들의 눈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지냈는데... 그런 나를 좋다고 하는 아이들의 말에 죄책감과 미안함이 공존함과 동시에 나를 향한 불순물이 없는 맑디 맑은 아이들의 사랑이 느껴져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그 깨끗하고 맑은 아이들의 사랑이 나의 차디찬 수감자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줬다.


아이들은 '어떤' 엄마가 좋은 게 아니었다. 그건 내 안의 아이가 가진 '엄마'라는 환상이었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나의 존재로 그저 좋은 거였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의 존재로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엄마의 사랑이 누가 더 크다고 했던가.

나는 그 말에 반대한다. 엄마의 사랑 못지않게 아이들이 엄마에 대한 사랑도 크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엄마와 아이의
사랑의 숫자 값은 아이들이 더 크거나 같다.

그날, 그 아이들의 엄마인 나는 감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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