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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May 18. 2022

세상에는 완벽한 육아맘이 넘쳐난다

나만의 육아세상

세상에는 엄청난 육아 고수와 완벽한 엄마들이 넘쳐난다. 어쩜  아이들 밥을 저렇게 균형 있는 식단으로 잘해주는지...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도 집콕 놀이에, 교육에 열성인지... 게다가 살림은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게 하는 건지.. 다들 왜 이렇게 옷도 잘 입고 몸매는 좋은 거야?

 Another level의 육아맘이 넘쳐난다.


가깝게는 아이의 친구 엄마들의 생각과 태도, 멀게는 sns의 유명인들의 모습들을 보고 나를 거기에 빗대어본다. 자연스럽게 빛의 속도로 판단과 평가가 이뤄지는 나의 머릿속에 stop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판단과 평가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회사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승진도 매뉴얼대로 업무분장도 직원의 평가와 능력에 따른 인사과의 판단으로 그렇게 이뤄지는 게 효율적이지 않았는가.


사회생활을 또래보다 일찍 시작한 나는 그런 사회적 동물로 길들여졌기 때문에 그런 습관적 사고는 딱히 이상할 일도 아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나랑 똑같이 비교하고, 질투하고, 가끔 시기하고 고민하는 거 아닌가.라는 안일한 합리화로 그렇게 계속 지냈었다.


하지만


 엄마의 육아는 사회생활과 결이 다르다

미처 알지 못했다. 사회생활처럼 그 틀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면서 언제 생긴지도 모르는 마음 상처가 덧나는지도 몰랐다.


사회생활과는 결이 다른 엄마의 육아 생활은 상처가 덧난 만큼 방어하고 싶어 진다. 건드려지면 아프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센척하거나 포장한다. 내가 취약한 아이들 반찬에 대해 누가 말이라도 할라치면 미리 나서서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다고 하고, 청소나 살림에 대해 이야기하면 내 체질에 맞지 않다고 떠벌리기도 한다.


모든 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그러면 마음의 상처가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타인에게서 나를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 마음의 화살이 두려워 그렇게 습관적 방어기제가 발휘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결과는 그 반대였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마음이 제일 먼저 듣는다.


겸손인 양 교묘하게 나를 감싸듯 포장을 한 그 말들의 팩트는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고 낮추는 말 범벅이라는 걸 늦게 서야 알았다.


나를 보호한답시고 한 그런 말들이 상처에 직격탄이었고, 내 자존감 세포들이 하나 둘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몸이 그렇게 피곤하고 두통에 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마음이 보낸 신체의 경고음을 듣지 못했다.


이상신호를 뒤늦게 느끼고 갑상선 암 검사를 앞두고 나서야 나는 나의 마음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나의 민낯을 그대로 인정해 보기로 했다.


그래, 나 요리 못해.
그래, 나 살림 못해.
그래. 나 육아 버겁다. 오늘 힘들어.

그래, 나 화났어, 짜증 나.

그래, 나 살쪘다.
그래, 나 이제 좀 늙었지.


포장하지 않고 나를 인정하는 말을 들은 나의 마음은 의외로 상처를 받지 않았다. 몸이 아픈 위급한 상황이라서일까, 오히려 편안하게 수용된 게 신기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행동에, 말에,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크기만큼의 내가 바라는 모습과 현재 행동과 마음이 어긋나 있음을 알아갔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내 안의 수많은 나와 친해지기로 선택했고 나를 인정해가고 수용해가는 과정들 속에서 힘을 잃었던 자존감 세포들이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육아에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조급하거나  초조한 게 사라지고 느긋해지고 너그러워졌다.


힘들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본 많은 육아서에 내 아이가 없듯 수많은 엄마들의 세상에서도 나와 같은 엄마는 없다.


기준은 내가 내 아이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내 아이의 육아의 기준이 타인에게 기인한 것만큼 위험한 육아도 없지 않을까. 그들의 아이와 나의 아이가 같을 수 없듯이 엄마들의 육아의 대한 가치나 교육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같을 수가 없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는 진리,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아이가 세상 어떤 아이보다 특별하듯 나도 어떤 틀이나 기준에  들어갈 수 없는 그냥 나로서 특별한 엄마다.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가치 있고 소중한 육아에서 그저 나의 속도에 맞게 아이를 키우면 된다는 소신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아이와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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