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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Sep 27. 2022

오늘도 지옥행.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은 죽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거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하루에도 숱한 지옥을 마음에서 경험한다. 그중 나에게 가장 으뜸인 지옥은 백이면 백. 육아에서 벌어진다.




쌀쌀한 아침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두툼한 맨투맨 운동복을 입었고 아이들은 바람막이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부터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아이들 겉옷을 챙겨 입히고 병원에 가는 길이다. 새벽에 아들이 구역질 날 것 같은 기침을 여러 번 하며 잠을 설쳤다. 이틀 전에 지어온 약이 안 맞는 모양인지 기침 소리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작년 이맘때 아들이 기침으로 며칠을 먹지 못했던 시기가 떠올랐다. 밥을 삼킬 수가 없을 정도로 기침이 심했다. 오래가면 폐렴으로 갈 거라는 의사의 말에 걱정을 안고 밥 대신 죽과 우유로 며칠을 보내며 몸무게가 일주일 만에 이키로까지 빠진 적이 있다. 잊고 있었던 그때의 속상했고 걱정됐던 기억이 올라왔다.


경험으로 얻어진 감정은 마음에 각인된다. 그렇게 새겨진 마음이 올라와 그때와 같은 상황이 되면 안 된다는 불안한 마음에 내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지금보다 심해지지 않기 위해 어서 약을 바꿔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새 아들의 기침을 지켜보느라 덩달아 못 자고 걱정이 많아진 나는 이미 몸과 마음이 잔뜩 긴장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조급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 둘은 집을 나온 사실만으로 신나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을 치며 병원으로 가는 길로 웃으며 달려간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내 마음과는 상반되어 이질감이 느껴진다. 내가 사는 세계와 아이들의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다. 나는 나대로 살고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크고 있는 것이니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지금 나의 마음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새벽부터 잠 못 자고 이어진 불안한 감정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합쳐진 혼탁한 마음으로  스스로가 힘이 든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한 생각에 오전 9시가 안 된 시간에도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 같다. 밤새 잠을 못 자서 정신은 몽롱하고, 더군다나 입도 짧은데 기침으로 먹지도 못하는 아들의 삼시 세 끼를 어떤 걸 먹여야 하나 머리가 복잡하고 시끄럽다.


내 머리가 분주한 사이 병원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투며 병원 건물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단골손님인 아이들의 이름을 병원 안내 데스크 직원이 외우고 있어 아이들을 확인하고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친절하게 대기자 명단에 올려주었다.


기다리는 대기실에 아들이 기침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침에 가래소리가 섞어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목과 코의 염증이 심한 편이 아니라고 했다. 폐소리도 괜찮은데 그에 비해 기침이 심한 편이라고 했다. 약의 처방을 조금 바꿔서 해보겠다고 했다. 진료 내내 들은 기침 소리로 아이가 밤새 이런 기침을 했으면 힘들었겠다고 단골손님인 아들을 의사 선생님이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빌려 잘 먹고 잘 자야 한다고 다시 한번 아이에게 알려주면서 병원을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유치원에 가자는 나의 말에 딸아이는 동생이 아프니까 놀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 동생하고 놀아준다고는 했지만 엄마와 동생만 있는 게 속으로 부러운 모양인가 보다.


아들이 나에게 기침을 하며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할 때마다 딸은 아들과 같은 눈빛을 하고 내 앞에서 안아달라고 말은 하진 못 하고 은근히 내 쪽으로 와서 자신의 몸을 기댄다.


딸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가볍게 안고 등을 토닥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마저도 영혼 없이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아이가 아파서 몸으로 치대는 오늘 같은 날은 내 마음이 더 지친다. 번갈아 가며 안아주는 내 체력도 지치지만 아픈 아들 뒤로 보이는 누나인 딸아이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그 마음에 부응해서 눈빛으로 몸으로 표현해주지 못하는 엄마라서 딸아이가 안쓰럽다.


저녁이 되고 체력이 방전되면서 내 마음에 미묘한 짜증과 화가 내 안에서 들끓기 시작하고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목소리로 표출된다.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는 것, 밥 먹을 때 장난을 치는 것, 평소와 같은 아이들의 행동에도 내 언성이 높아진다.


흠칫 스스로 놀라며 기분전환 겸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커피를 서둘러 한잔 더 내려 마신다. 말투나 표정이 격양된 나를 보면서 눈치 백 단 아이들이 나에게 치대기보다는 멀찌감치 거실로 가서 둘이 역할 놀이를 하며 놀고 있다.


식탁에 앉아서 오늘 두 번째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렇게 조금만 떨어져 보면 한없이 예쁘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과 모습들만 보인다. 그 시간엔 탁한 감정도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도 없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야말로 마음이 천국인 시간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나의 감정에도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힘들만한 상황이잖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스스로에게 내편이 되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육아를 하다 지옥 같은 하루가 늘어날수록, 스스로 내편이 되는 시간도 길어지기를 희망해본다. 쌓이다 보면

지옥도 지옥으로 느끼지 않는, 그런 날들이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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