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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Sep 15. 2022

사실,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전화통화

용기라는 게 뭐였더라.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서 용기라는 게 점점 희미 해져 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단연코 실행력.

행동하지 않으면 이뤄지는 게 없다고 한다.

 

그런 말의 의미를 모를 나이는 아니다. 다만 알고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마음에서 용기가 나질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들을 그려보고 예상하고, 재고 따지는 머릿속 자동적 생각들이 올라와 주저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나는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열 번 고민하고 실행하는 단 한 번의 작은 용기가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으니까...




지혜는 내 친구 선미의 절친이다. 스무 살 때부터 친구의 친구로 만나 셋이 종종 만남을 가졌던 우리가 선미가 없이 친해진 건 23살쯤. 나의 자취방 바로 옆 동네로 지혜의 주거지가 옮겨진 뒤부터였다.


퇴근 후, 치맥을 함께 하며 젊고 상큼했던 우리의 청춘을 함께 했다. 서로의 연애 히스토리를 빠삭하게 알고 있으면서 둘 다 서비스직에 몸 담고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당시 감정 노동자로 살며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애쓰는 우리의 삶을 위로하기도 했다.


지혜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함이 매력이다. 가까운 사이라도 조심스럽게 대하기보다 돌직구로 말하는 지혜만의 스타일이 기분 나쁘지 않고 유쾌했다.


지금은 8살 터울의 형제를 키우고 있고, 늦게 임신했다고 좋아했던 작은 아들이 벌써 4살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나처럼 키와 몸무게가 영유아 검진 10프로 이내인 아들을 둬서 우리 둘은 입 짧은 아들을 주제로 한 시간도 부족하게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이걸 먹으니 살이 좀 붙었다느니, 이 요리법으로 하면 아이가 좀 많이 먹는다는 둥, 핫한 영양제를 함께 공구하면서 아들의 체중을 늘리기 위해 열정적인 육아 동지로 마음을 나눴다.


육아만 하던 내가  다시 심리학 공부를 시작할까 고민할 때 지혜와 통화한 적이 있다. 그때, 지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라면 잘할 거 같은데~ 더 용기 내봐."


이 대답을 듣고 나니 마음에서 뭔가 움찔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아마도 어떤 확신보다 마음의 용기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용기 (勇氣) [명사]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용기는 내 인생에서 꽤 어렵지만 의미 있는 단어다.


초등학교 때, 지금의 성격과는 반대로 극도로 내성적이었던 내 성격으로 할 말을 하지 못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 억울한 기억이 있다. 그 억울함을 두 번 다시 겪기 싫어 친구들 앞에 나서서 싫다는 말을 해야 할 때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신혼 초 남편이 내 맘 같지 않아 다툴 때, 내심 미안하다는 말을 기다렸지만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남편에게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런 경우를 자주 겪다 부부관계에서 힘겨루기를 관두고 내가 먼저 미안하다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가족관계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생겨 그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내가 너무 괴로웠을 때가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힘들고 불편한 내 마음을 그 사람에게 말로 전해야 했는데,

그때도 용기가 필요했다.


아이들을 육아하다 내가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내 감정에 치우쳐 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져버릴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어른인 내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진심으로 사과해야 했을 때, 용기가 필요했다.


살면서 이렇게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나는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여타 사회생활에서도 더 나은 성숙한 관계로 발전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발전은커녕 여전히 어둡고, 소심하고, 할 말을 못 하는 사람으로 인간관계에 주눅 들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용기는 나를 변화시켜 주었다. 더 밝은 성격으로, 내 힘으로 설 수 있게.

내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말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내년에 내 나이 마흔(빠른 84라고 우기던 시절은 미안했다, 지금 마흔 살 친구들아)

8년 차 경단녀(경력단절 여성)

예전과 다르게 건강했던 성격이 변해도 너무 변했고, 자신감도  낮아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은 의심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지금 독박 육아를 하며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이 무모한 도전인 것만 같다.


많은 도전을 뒤로 미루고 또 미뤘다. 쌓아두기만 하고 시도조차 못하는 나는 점점 겁쟁이 아줌마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백세시대를 위해 스스로 살아갈 시간들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되지 않냐고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채근한다. 하지만 이내, 내 안의 수많은 나 제한하는 편견들이 도전할 마음들에 재를 뿌리기 시작한다.


그런 내적 대화들이 오가다 보면 기운이 빠져 용기를 내는 게 한편으로 귀찮아지면서, 쓸데없이 용기 내지 말고 이대로 살다 죽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자포자기 심정이 뒤를 잇는다.


그렇게 육아를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삶에서 주체가 되지 못했다. 아이에게 남편에게, 때로는 시가 식구들과 친정식구들의 상황들에 쉽게 휩쓸렸다.


제대로 나 자신으로서 땅에 발 붙이고 서지 못했다. 상황과 현실을 핑계로 하지 못한 행동들이 결국, 지금의 소심한 아줌마로 나를 추락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에서 용기가 좌절되던 날, 우연히 통화하다 들은 지혜의 말이 나의 마음을 일으켜줬다.


여느 독서모임과는 다른 독서모임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실패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지혜는 나에게


[나도 그런 거 해보고 싶어~ 시작해봐도 좋을 것 같아] 라며 흔들리는 내 마음에 용기를 줬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아마추어인 내가 글쓰기를 하는 게 맞나 스스로 의심하던 나에게 지혜는 조용히 구독자가 되어 나의 글을 읽고 [응원한다]는 댓글을 남겨줬다.

글을 적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작아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격려해줬다.


사람은 살면서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없는 순간이 언제나 찾아온다. 그럴 때 생각지도 못한 타인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용기가 되어 일어설 힘을 얻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지혜에게 받은 용기처럼 말이다.


용기라는 카드의 뒷 패가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지지와 격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혼자만 나를 독려하기보다는 나의 실패와 도전의 과정을 격려해 주며 바라봐 주는 타인의 지지로, 누군가는  용기의 씨앗을 마음에 심을 수도 있다.


주변에 나처럼 주춤하고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말 한마디로 그 사람 마음의 용기라는 씨앗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말이 씨앗의 영양분이 되어 아름 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언젠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지혜에게 받은 용기처럼, 오늘은 내가 응원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통화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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