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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Oct 18. 2022

다정함의 기준이 같다는 착각.

우리는 같은 언어에 다른 경험을 담는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타인의 기준과 내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정하게 말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힘들어했던 친구가 있다. 출산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여자들의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럴 때 남편이 부드럽게 말해주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칭찬해주길 원한다. 그래서 친구도 그걸 원했다고 한다. 그때 친구의 마음에 공감했다. 실제로 육아를 하고 집에만 있으면 외모, 몸, 시간, 의지까지 아이에게 맞춰가기 때문에 가끔 내 처지가 슬퍼지는 '순간'이 있다. 이건 육아의 행복과는 별개의 문제다. 또 출산 후 살도 늘어져 외모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경력이 단절된 경우 다시 사회에 복귀하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생긴다. 남편도 사회에 나가서 고생을 하는 걸 누구나 알지만 출산 후 1년 만은 아내에게 더 다정해도 좋은 시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정한 남편의 말이 힘이 된다'는 친구의 말이 아주 공감되었다. 하지만 친구 남편을 직접 본 건 아니기에 남편의 마음은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부부관계 둘만 알겠지만 평소에 친구에게 들은 남편은 가정적인 면모도 많이 보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서 친구에게 그런 부분이 좋은 남편 같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에 반해 나는 나의 남편이 다정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친구도 이런 내 생각을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 생각을 친구에게도 공유했고 그래서 친구 또한 내 남편이 다정하다고 생각하며 5~6년을 대화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해준 얘기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친구가 놀라며 “그런데 상처를 안 받는다고??”라고 말했다. 나는 행동과 목소리가 다정하지만 피드백이 냉정한 걸 좋아한다. 고민상담을 할 때 개인적으로 듣고 싶은 말은 ‘무한 긍정의 힘을 주는 메시지'가 아니다. 명확한 솔루션을 원한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주거나 새로운 시선으로 생각을 전환시켜주거나 실제 상황에서 시도할 수 있는 해결책을 원한다. 그래서 고민을 얘기할 때  따뜻한 응원보다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도와주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이건 내 성향이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나의 남편이 생각보다 냉철한 피드백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다정’하다고 한 말을 듣고 친구가 생각한 다정한 이미지로 나의 남편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나의 남편의 피드백이 자신의 남편의 피드백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 후 서로의 남편의 MBTI가 같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도록 친구로 지내 온 우리는 그동안 공유해왔던 '다정함'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다르게 인지된 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에 대해 한참을 수다 떨었다. 그리고 몇 번의 만남이 지나 자주 가는 카페에서 친구가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다정함과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이 달랐다는 게 나에겐 꽤 충격적이더라. 어쩌면 내가 너무 남편이 냉정하다고 편견을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눈으로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더라고. 내가 남편이 냉정하다는 시선으로 봤기 때문에 더 그래 보였는지도 모르지"하고 말이다. 난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사려 깊고 따뜻하고 다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다정한 남편에 이어 다정한 친구까지 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말랑한 시선이 다정하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운동장에서 기준이 되는 사람 쪽으로 모인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기준은 오른쪽 끝에 있는 사람이  수도 있고 왼쪽 끝에 있는 사람이  수도 있고 중간에 있는 사람이  수도 있다. 운동장 안에 있는 사람은 같지만 기준은 어디에나  수도 있다. 오른쪽 끝에 있는 사람이 생각할  반대편은 왼쪽 끝이고 왼쪽 끝에 있는 사람이 생각할  반대편은 오른쪽 끝이다. 세상만사 '그저 기준이 다르구나'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지는 공간이 생긴다. 친구와 나는 이걸 깨닫고 공유할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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