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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06. 2023

오해알레르기

유독 오해알레르기가 심했다. 누군가 나를 자주 오해하거나 잘못 알아들을 때 타이밍상 넘어가도 되는 문제도 (지금 돌이켜보니) 그 상황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상대는 내 말을 변명이라고 받아 들였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사람을 몇 명 만나다 보니 ’아 이 사람은 변명해도 안 통하겠다 내버려 두자 ‘

‘이 사람에게는 조금 더 나를 설명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세상은 오해투성이고, 나를 제대로 알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오해를 그냥 두지 못할까? 하고 말이다.


어느 날 예전에 친했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 규정‘되었다. 한번 한 실수, 잠시 보였던 태도, 함께 했던 시간이 그 친구의 기억대로 각색되어 있었다. 그 속에 그때의 내 마음, 생각, 환경 등은 없었다. 함께했던 좋은 시간들은 어디에 가고 그 친구 옆에는 일그러진 내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무서워했던 건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독 감정을 늦게 알아차리던 편이고 키가 작은 편이라 친구들이 동생을 대하듯 나를 챙겼다. 그래서 나보다 빠른 판단력으로 내 감정, 내 태도를 짐작했다. 그때는 스스로도 ‘친구들 말이 맞는가 보다’ 하고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 도서관에서 심리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게 되었고 유튜브가 생겨나 다양한 전공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조금씩 감정의 속도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야매 마음공부를 한지 몇 년째 되던 날, 유독 오해가 무서워지게 된 이유가 문득 떠올랐다. 그건 바로 ‘첫 오해는 잘 수정이 되지 않아서다’. 나는 수정되지 않는 오해가 두려웠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한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게 힘들었다.


오해를 쉽게 하는 사람은 그 오해를 수정하지 않는다. 나를 잠시 보고도 ‘규정하는 말’을 뱉는 사람은 자신의 데이터를 신봉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면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 만날 때마다 머릿속에 그려진 나와 대화를 한다. 그럴 때는 한 공간에 함께 있음에도 소외감을 느낀다. 외롭다. 그래서 예전의 나는, 오해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된 나는 박제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규정하는 사람들’과 거리 두는 법을 배웠다.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더 상처를 받는다. 이제는 마음 가는 사람이라도 성격에 따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누군가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내가 당신보다 쉽게 마음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사람관계에서나 사랑에서나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은 언제나 더 힘들다. 어릴 때부터 정이 많다고 걱정하던 엄마는 나의 이런 이면을 애초에 파악하셨다보다. 엄마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을.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경험해야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유를 알고 나니 오해알레르기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알아차린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오해하는 사람과도 적정한 거리로 잘 지낸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터득해사는 이 거리를 나는 지금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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