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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07. 2023

사소한 말투에서 일상의 질이 결정된다.

내 말투는 나도 듣고 상대도 듣는다.

사소한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과의 갈등에서도 그렇고 일상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사소한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소한 부분을 놓치며 산다.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일이나 일상에 '사소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면 왜인지 충만한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사소한'이라는 형용사가 갈등에 붙었을 때 의미는 달라진다. 가끔 자신에게 사소한 일은 큰 일이지만 상대에게 사소한 일은 작아 보이는 '자기중심적인'마인드로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조금씩 '자기중심적‘ 일 수밖에 없지만 타인의 갈등을 제삼자로서 보게 되었을 때 이 자기중심적인 마인드가 더욱더 잘 보인다. (자신의 일 앞에서는 누구나 객관적일 수 없으니까) 그런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내 안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부분을 되돌아보곤 한다. 아마도 삶을 스스로 깨닫기보다 '타산지석'의 방법으로 깨우치는 편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이번에 겪은 '사소한 이야기'는 나 자신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던 며칠 전 이야기다. 요즘 남편의 말투가 유난히도 퉁명스러웠다. 퉁명스러운 말이 끝나면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며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라고 물어보았다. "별로 그렇지 않은데?"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원래 자기 안 좋은 기분 잘 못 알아차리면서...'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남편은 부정적인 감정을 늦게 깨닫는 편이다. 그 감정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기분이 안 좋았구나라고 알아차리는 편이다. 그런데 남편의 퉁명한 말투가 며칠 째 이어졌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요즘 말투가 퉁명스러워서 들으면 기분이 안 좋아. 며칠 째 계속 이런 말투라서 들을 때마다 기분 별로야"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슈퍼에 가던 남편이 밝은 목소리로 " 나 세제랑 ~ 우유 사 올게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밝게 이야기해 주는 거야?"라고 했더니 "응!"이라며 바깥으로 나갔다. 남편의 '사소한' 말투가 세 차례의 이야기 끝에 밝아졌다. 그랬더니 할 일이 많을 때마다 어두워지는 내 말투가 의식 위로 드러났다. 거슬려하던 남편의 말투와 닮아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 그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예전에 일을 하다가 바쁠 때 전하는 말로 오해를 산 적이 있다. 화를 낸 건 아닌데 상대가 화를 냈다고 생각해 나에게 한 소리 한 적도 있다. 내가 급해서 상대가 오해를 했는가 보다 생각하며 시인하고 넘어갔는데 확실히 어떤 순간 말투가 퉁명 해진다는 자각이 들었다. 아마도 평소와 다른 온도차이로 조금 더 강하게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 말투는 나긋나긋하다는 말을 듣는데 친하건 안 친하건 바쁠 때는 급한 성격 탓에 직설적으로 변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말투만큼 감정이 격해지는 건 아닌데 왜 바쁠 때마다 내 말투는 퉁명스러워지고 직설적여지는걸까?  얇은 새끼줄을 꼬으고 꼬아 겹쳐서 만들어진 굵은 밧줄처럼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사소한'습관을 또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서른 중반이 넘을 때까지 함께 했던 이 말투와 이제는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상도말은 어떨 때는 따뜻하고 정겹지만 음이 높아지면 거칠어진다. 바빠지는 순간이면 나는 어느새 경상도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 이십 대 때도 강하게 주장하는 순간들은 모두 따뜻한 경상도 여자가 아닌 거친 경상도 여자였을 것이다. 말투는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 힘은 강력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말투로 영향을 주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바쁠 때마다 남편이 내 감정을 받아내었겠다는 생각에 죄책감에서 눌려지려던 찰나에 그냥 멈추었다.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어디야!' 평생 이렇게 사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죄책감 가질 시간에 어떻게든 말투를 고쳐보자'라고 강하게 합리화해 보기로 했다. 수없이 죄책감 가지고 민망해 본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말투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이다. 자각하고 나면 큰 것이지만 우리는 삶에서 말투가 주는 영향력을 크게 느끼지 못하며 산다. 하지만 내 말투를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바쁠 때마다 바뀌는 나의 말투와 나의 모습에서 삶을 대하는 마인드와 태도를 배워나갈 것이다. 그래서 바빠질 때마다 나를 고쳐 세우기로 했다. 이런 다짐과 방법으로 지난 시간 동안 나만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과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아왔다. 이제는 내 속에 가득한 습관적 말투를 바꿔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아이를 달래듯 나를 바꿔나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남편과 아이들이 인정해 줄 때까지 이 노력은 지난하게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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