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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27. 2023

아이의 세상, 엄마의 세상

하나의 시선에 담기에 아이의 세상은 넓다.

육아를 하면서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끝없이 느낀다.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있고 심리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서적을 매달 읽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육아는 어렵다. 육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시선을 넓히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뿐 아니라 아이의 삶도 함께 보아야 해서다. 아이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살아온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다양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공부 중 하나에 ‘유아발달’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유아교육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입을 모아서 얘기하시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년에 교육학시간에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계획하거나 의식하지 않은 가운데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교사가 가진 감정이나 정서, 가치관 태도 등이 특히 여기에 해당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배우는 것보다 비의도적으로 배우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려보라는 말에 누구도 역사시간에 배운 조선시대 지식을 기억하지 않는다. ( 몇몇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이 나를 대해줬던 태도, 친구들과 즐거웠던 감정, 속상했던 감정들을 떠올린다. 그 감정을 느끼게 했던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간중간 말해주었던 생각이나 에피소드가 때로는 마음에 깊이 남아 학생의 생각이나 감성에 영향을 주곤 한다. 이것은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한 교육은 아니다. 하지만 영향력은 크다. 유아시절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생들은 유치원 담임선생님의 웃는 모습, 문 닫는 습관까지 쏙 빼닮는다고 한다. 유치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은연중에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배워 나온다.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학에서 학문적으로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해 배웠지만 잠재적 배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말투, 표정, 감정조절, 삶을 보는 시선, 태도, 식습관, 생활습관 모든 것을 배운다. 대부분 청소년기까지는 가정에서 생활하는 한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정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가장 내밀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발달이론 중에는 브론펜브레너의 생태학적 발달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으면서 발달한다는 것이다. 브론펜브레너가 말한 생태학적 발달이론에는 미시체계 (가정, 또래, 학교, 이웃), 중간체계 (미시체계들의 관계 : 부모와 선생님의 관계, 또는 부모와 이웃의 관계 등) , 외체계 (직접적 영향은 아니나 간접적인 환경 : 부모의 직장, 이웃의 특징), 거시체계 (문화 및 규범) , 시간체계 (일생동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 사회역사적 환경) 등의 환경이 있고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며 발달한다는 이론이다. 우리는 이렇게 환경 자체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환경에서 주고받는 언어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란다. 어떤 이는 ‘주어’를 꼬박꼬박 쓰는 부모를 만나 체계적인 언어를 배우는 반면, 어떤 이는 ‘주어’나 ‘목적어‘를 늘 빠트리는 부모를 만나 허술한 언어와 사고체계를 자연스럽게 물려받기도 한다. 이것도 꼬집기는 애매하지만 삶의 틈 사이로 스며들어 업무성과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번스타인이 언어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이것을 번스타인의 언어사회화계급이라고 말하는데 가정에서 취득한 언어가 학습성취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번스타인은 사회계층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어법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실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자세한 설명을 위해 (전공서적에 자세한 예시가 없습니다ㅠㅠ)

유튜버 ‘임작가’님의 사회계층과 언어 -부모의 사용 수준과 자녀의 성적관계 1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그 실험은 다음과 같다. 중산층에 속하는 아이들과 노동계층에 속하는 아이들에게 네 장의 그림을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말한다.

4장의 그림은 아래와 같다.

1번 그림. 소년 몇 명이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

2번 그림. 소년들이 가지고 놀 던 축구동이 어떤 집의 유리창을 깸

3번 그림. 한 여자가 깨진 유리창을 통해 아이들을 내다보고 있음. 한 할아버지가 험악한 몸짓을 함

4번 그림. 아이들이 도망치고 있는 모습


중산층 아이들과 노동계층 아이들이 그림을 설명하는 말을 들어보자.


중산층 아이들

“몇 명의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찬 공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어요.

유리창이 깨지자 아이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어요.

이때 한 남자가 그 집에서 나와서 아이들이 유리창을 깼다고 고함을 치자 아이들은 달아나고

주인아주머니가 창문을 내다보며 아이들을 책망하고 있어요. “


노동자계층 아이들

“걔들이 축구를 하고 있어요. 걔가 그걸 찼는데 , 그게 날아가서 유리창을 깼어요.

 그걸 보고 있는데, 그가 나와서 그걸 깼다고 걔들에게 고함을 질러서

 걔들이 달아나고, 그 여자는 밖을 내다보며 걔들을 책망하고 있어요 “


중산층 아이들은 구체적이고 명시적이지만 노동계층아이들은 암시적이다.


-

아이들의 언어는 대부분 부모로부터 배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말을 듣고 언어와 세상을 배우기 때문이다. 말처럼 우리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도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학업 등 다양한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육아를 할 때 유아발달에 대한 기초공부가 필요한 이유는 이런 지식 자체가 아니다. 아이의 발달단계와 아이가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알게 되면서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엄마가 보여주는 세상만큼을 산다. 엄마가 좁은 시선에서 살면 아이도 좁은 시선에서 산다. 엄마가 아이의 행동을 좁은 시선에서 해석해 나가기 때문이다. 교육적인 의미가 아니라 행복의 기준에서 말이다. 유아발달을 공부하다 보면 ‘아이의 고유한 발달’도 있지만 아이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라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걸 알아갈수록 아이의 행동에 나의 몫이 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러면 아이를 혼내는 일이 줄어든다. (혼내는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러면 아이의 깨알 같은 실수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잔소리를 멈추게 된다. 유아시기는 엄마의 언어를 통해 자아를 형성해 가는 시기다. 시선이 넓은 부모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언어를 덜 사용한다. 그를 통해 아이에게 긍정적인 자아를 심어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를 조금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 중 하나는 엄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좋은 것을 해주려고 하기보다 좋지 않은 것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힘든 날은 힘든 엄마의 감정도 설명해 준다. 오늘 엄마가 왜 힘든 마음이 드는지 말이다. 어차피 아이는 아이의 몫만큼 알아들을 것이다. 버럭 화내는 엄마의 감정을 받는 것보다 완전히 이해는 못하겠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이에게는 더 친절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엄마가 조금 불편해도 편안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말이 힘들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의견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나는 엄마인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편안해야 아이도 편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엄마 잠시 혼자 있게 해 줘”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오후에 혼자 브런치집에 가서 기분전환 하기도 한다. 아이들 저녁반찬은 만들어먹여야지 하며 시장에 갈지언정 낮에는 혼자서 맛집을 검색해서 ‘남이 해준 ’ 순두부찌개 한 그릇 먹고 온다. 그래야 밝은 얼굴로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넓은 시선을 가지기 위해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쓴다. 그러면 하루하루 좁아져가는 시선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거나 잘못된 것을 되돌아보는 과정은 딱딱해지는 생각을 조금씩 말랑하게 만든다. 그럴 때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조금씩 말랑해지는 것을 느낀다. 엄마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의 세상을 그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사실 자체가 엄마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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