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긴 어떡해! 나무도 흔들리며 자라고 바다에도 파도가 치는 걸.
요 며칠 SNS에 마음이 와닿는 글들이 올라왔다. 2개만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른이란 이미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날마다 몸부림치는 존재다.
-맹자-
너는 너의 내면에 혼돈을 가져야만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뭐가 맞아?
종종 '혼란한 육아상태'에 빠진다. “육아!! 왜 이렇게 어려워~~” 라며 혼란에 빠졌다가 "한 사람을 키워내는데 쉬운 게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혼란을 합리화하려 든다. 요즘에는 육아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유튜브나 책, 티브이를 통해 올바른 육아방법을 많이 알려준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필터링이다. 전문가들의 좋은 말을 나의 성향과 아이의 성향에 맞게 적용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같이 좋은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문해력'과 더불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적용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패하며 만드는 나만의 기준
다른 사람들의 육아조언을 들을 때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약 8년 전... 첫째를 낳고 실수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첫 째가 어린 시절에 수면교육이 유행했었다. 그래서 아이를 혼자 재우라는 말들이 책과 블로그에 도배가 되었다. 그리고 등센서가 발동할 수 있으니 불필요하게 자주 안아주지 말라는 글들이 있었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어릴 적에, 고르라면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였고 안아주지 않으면 자주 울었다. 그래서 첫 째를 자주 안아주었다. 그때는 삼십 대 초반이라 체력도 괜찮았고, 그냥 내가 안고 싶고 편해서 많이 안고 있었다. 순간순간 '이게 맞는 방법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안아주길 잘한 것 같다. 그 시절 순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주변 지인이 수면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때는 한 번씩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수시로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는 나와 달리, 상대의 아이는 한번 재우면 아침까지 쭉 잠을 잤다. 안 그래도 블로그나 책에서 수면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의 불안으로 아이를 재우지 못하나?라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14개월쯤 된 아이를 혼자 자게 두고 방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다. 그날 아이가 좀 울었다. 결국에 아이가 계속 울어 안아 달랜 후 재웠다. 왜인지 요즘도 그때 한 실수를 종종 떠올린다. 첫째가 그날 혼자 운 기억 때문에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무서워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가 되면 모든 게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이 실수를 계기로 아이의 기질이 다르면 참고하지 않고, 나 또한 육아조언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게 되었다.
가지치기
나와 기질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조언은 참고만하는 것. 이것이 내가 조언을 들을 때 세운 기준 중 하나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合)이라고 생각한다. 유아교육에서 이것을 '조화의 적합성'이라고 배웠다. 유아의 기질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양육환경 구성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나는 자녀와 부모의 합에 따라 양육의 질이 달라진다는 느낌으로해석했다. 첫째가 어릴 때 자주 만났던 지인은 순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육아 효능감이 높았다. 그래서 자신의 양육기술이 정답이고, 나의 육아방식은 유난인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첫 째가 울면 "예민하다. 예민해"라는 말을 쉽게 뱉었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고 처음, 나의 의지로 관계를 끊었다. 소중한 기질을 '예민하다'는 말로 치부해 버리는 배려 없는 말을, 아이에게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보니 둘째는 혼자서 잠도 잘 자고 모유뿐 아니라 분유도 곧 잘 먹었다. 당연하게도 순한 기질의 아이는 재우고, 먹이는 것이 편안하다. 첫째와 둘째는 기질이 다르다. 커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슷해지는 모습이 보이지만 상황에 대한 반응도 다르다. 같은 엄마라도 아이에 따라 다른 대처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니 육아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아이에 따라, 부모에 따라 달라진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양육을 할 때 배우고 적용하는 것도중요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가지치기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가지치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이야기가 모두 중요하게 느껴지고, 나는 무언가를 계속 놓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각자의 집에서 어떤 육아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또한 말과 행동이 다른 부분도 있다. 그래서 사람이기에 그나마 나를 붙잡아 줄 기준을 잘 세워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많이 생각하라는 말은 아니다.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는 순간들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도 많이 하면 복잡해진다. 반복하는 생각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과제
정혜신 님의 책 '당신이 옳다'에서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이라는 오래된 명제'라는 글이 나온다. 나는 처음 듣는 말인데 오래된 명제였다니... 그나저나 이 글을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했는지 모른다. 처음엔 왜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말의 명쾌함에 박수가 나왔다. 내가 든 생각은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이지 못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는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적임을 심플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 그래서 지금은 아이와 나만 생각하며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와 조율하는 과정을 들키는 것이 가끔 부끄러운 순간이 있었다. 흔들리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나에 집중해 보면 맞춰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남편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매 순간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아이들과 잘 살아가는 것이 엄마로서의 내 과제다. 육아에 있어서 타인의 말과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흔들림에 대한 편견
돌아보니 나는 흔들림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현명한 엄마는 무엇이든 명확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SNS에서 만난 앞의 두 글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어떤 엄마는 명확한 엄마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가끔 흔들리며 육아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사실 글만 보면 육아에 대해 고찰하며 사는 사람 같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도 꽤나 관심이 많다. '나'도 아이들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아할 때는 육아에 집중하고, 아이들이 등원, 등교하고 나면 또 집중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내가 육아에 특히 열심히인 시기는 바로 그래프가 아래로 내려왔을 때이다. 그래프가 올라가면 또다시 육아보다는 다른 부분에 집중한다. 글을 쓰다 보니 '육아에는 정답이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는 흔들리지 않아야 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다. 답이 없다면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 답을 찾기 위해 헤매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 부로 나의 흔들림 자체를 사랑하기로 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틸 때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이를 위해 가벼워져야지. 나는 충분히 흔들렸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내가 맞다고 버티지 않았기에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이상 자기 합리화의 엄마현장이며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아 보았다.
다시 한번, 흔들리니 엄마다!!! 대추 한 알이라는 시로 오늘의 글을 마친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