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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Dec 02. 2024

오목렌즈의 시선으로 봐야할 때

점검의 물동이

좋은 말을 하는 건 쉽다. 살다 보면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하지만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에 만난 A씨도 그렇다. A를 보면 더더욱 실천하는 것만을 글로 쓰려고 노력한다. 타산지석의 자세로. 실천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 순간 알아차리고 기존의 나와 다르게 행동'하려 고 했다는 뜻이다. 나의 실수를 바라보고 개선해 나가는 것은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것도 나름의 실천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A의 실천하는 과정을 보고 성급하게 말을 뱉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도 지금은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일상에서 실천하며 말과 삶을 일치시켜 나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볼록렌즈의 시선


인생이 피곤해지는 순간은 타인의 단점에 볼록렌즈의 시선을 장착했을 때이다. 예전에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닌 적이 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동료와 있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평소에 내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단점이 확대되어 다가왔다. "저 사람은 참 예쁜데 덧니가 망쳐놨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의식하지 못했던 동료의 덧니가 또렷하게 보였다. "저 사람 피부가 좀 안 좋잖아. 자세히 보면 좀 심각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피부가 좋지 않기에 그 사람에게서 한걸음 물러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볼록렌즈의 시선의 또 다른 효과는 '다른 사람을 지금 이 순간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이다. 너무 짧은 시선은 상대가 힘든 상황이든, 상대가 아주 좋은 상황이든 지금 상태로 미래까지 판단해버린다.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고 말은 에너지를 가진다. 짧은 시선은 배려가 없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판단을 하기에, 언제나 점검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나도 어떤 순간에는 사람의 지금을 보고 미래를 점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오목렌즈의 시선


삶에서 오목렌즈의 시선이 필요할 때도 있다. 가끔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멀리 보아야 한다. 마음이 가까우면 단점들이 너무나 잘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멀리 지내라는 말이 아니라 심적 거리를 둬야 아이가 잘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QR코드를 찍을 때 화면을 너무 가까이 가져다 대면 QR코드가 인식이 되지 않는다. <물체가 화면 가까이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컴퓨터도 너무 가까우면 인식을 하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관계가 가까우면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너무 가깝게 보고 있습니다> 라고 알려줄 시스템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가족을 가까이 보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오목렌즈의 시선을 장착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유독 자극하는 아이의 행동이 있다. 엄마로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벌써 엄마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주변언니들이 "유아 때는 다 예뻐! 초등학교 가봐라" 했던 말이 귓 전에서 맴돈다. 정말 유아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머리로는 안다. 우리 딸의 모습 중 힘든 모습은 완벽히 나의 모습이다. 나와 닮은 부분이 나를 힘들게 한다. 우리 딸은 통제성향이 있다. 요즘에 드는 비유로 설명해보자면, MBTI에서 J의 성향도 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통제성향이 강한 편이었다. 일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혼자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이전에 비해 놀랍도록 P지만…) 그래서 아이가 동생을 통제하려고 할 때 유독 화가 올라왔다. 나름 천천히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세민아, 동생이 그 말을 듣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두고 놀면 돼. 안 그럼 네가 제일 불편해" (순화함)라고 말이다. 아이가 모든 걸 알아들을 나이가 아닌 것도 안다. 스스로 경험하면서 깨우쳐갈 것도 안다. 그럼에도 모든 걸 내 시선에서 설명하려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이의 시선에서 설명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성숙하게 알려주는 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도 하다. 이럴 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다름을 명백하게 느낀다. 그렇게 혼자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지내다가, 가끔 밀린 일이 많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벌컥 화를 낸다. 그러고 나면 미안함이 올라온다. 그래서 이내 마음을 다듬고 아이에게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하고 엄마 감정을 알려주고 안아주고 마무리한다. 하지만 약자에게 함부로 대한 치사한 어른이 된 것 같은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한동안 화내던 내 말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런 날이 지나고 나면 남편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혹은 자리에 함께했던 남편에게 피드백 받는다. 남편은 화내는 딸도, 화내는 나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첫째 딸의 모든 행동이 그저 귀엽다고 했다. 저만한 아이들이 할 법한 행동이라고 했다. 첫 째의 행동이 나를 닮아서 조금만 주의를 환기시켜도 풀리는 단순함이 재미있다고 했다. (적다보니 자랑같고..흠흠) 남편은 첫째의 화를 받지 않고 게임처럼 '주의 환기시키기'도전을 하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도 아이가 화를 냈다. 그러자 남편은 혼자서 폰으로 뭘 만지더니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하고 '아이스크림'과 '클러쉬' (아이돌 노래)를 틀었다. 첫 째가 방과 후 활동인 방송댄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첫 째 딸은 바로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그 자리에서 춤을 췄다. 남편은 첫째가 안 보이게 나한테 와서 "단순하다. 단순해. 여봉이 닮았다" 하고 엄청 뿌듯하게 웃으며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뭐가 웃기는지, 뭐가 귀여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그 무엇보다,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놓고 아이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제일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로는 아는데 왜 안되냔 말이야!!!!)


 

점검의 물동이가 엄마에게 중요한 이유


안경을 쓰려면 우선 내가 근시인지, 난시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 시선이 지금 너무 가깝게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관계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멀어서 탈이 나는 경우는 잘 없다. 대부분의 관계가 가까워서 탈이 난다. 거리가 가깝던지, 만나는 빈도가 높아서 가깝던지, 심리적 거리가 가깝던지, 내 관심이 너무 가깝던지. 모두 가까워서 탈이 난다. 그래서 내가 오목렌즈를 껴야 할 시기라면 '내가 지금 가깝구나'를 알아차리고 내가 너무 메말랐다면 '내가 지금 좋은 것들과 멀어졌구나' 생각해서 볼록렌즈를 끼울 필요가 있다. 내가 딸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난다면 우리가 너무 가깝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자각을 계속할 때 우리는 점검의 물동이를 채울 수 있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의식하며 알아차려야 한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딸에게서 잠시 멀어졌다. 그러자 우리 첫째의 같은 성향의 다른 면이 보였다. 모든 면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첫째는 하루 일과를 잘 스케줄링하고(1학년만큼), 숙제를 스스로 잘 챙기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것이 부족한지, 어떤 걸 잘하는지 잘 아는 편이다. 1학년 아이치고는 자신을 잘 알아차리는 편인데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친구들이 놀자고 해도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라고 의사를 밝힌다. 첫째도 나처럼 고요하게 머무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같다. 누군가는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이것은 이타적이지 않은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나를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이타적이라는 공식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는 있다. 하지만 진짜 이타적인 것은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알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첫째 딸이 자신을 먼저 살피고 친구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아이라서 기쁘다. (가끔은 더 부드럽게 양해해줬으면 하는 엄마마음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세련되게 양해를 구할 거라 믿는다) 또 스스로를 배려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아이도 그렇게 배려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첫째는 동생에게 한글을 알려주거나 춤을 잘 알려주기도 한다. 내가 존경하는 방기꺼이 교수님께 첫 째딸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면 교수님은 "리더십이 있는 멋진 아이네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거리를 두면 장점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적절하게 오목렌즈를 끼기 위해 점검의 물동이를 채워나가야 한다. 점검의 물동이가 차면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려 하지 않아도 '내가 너무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계속해서 물동이를 채워나가 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나와 가족을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 디폴트값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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