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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29. 2024

다정함의 기준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 2

다정함의 기준이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있다. 절친과 대화를 하면서 다정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남편이 다정하다고 생각했고 내 친구는 자신의 남편이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말을 믿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빠 (내 남편)가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그래서 나는 남편의 대답을 전해주었다. 남편 : "(솔직한 피드백@&!!?@#$%^) "라고. 친구는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상상한 다정한 남편이 할 법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친구는 다정하다고 말하는  내 감정이 아닌, 실제 오빠의 워딩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내 남편의 대답은 절친의 남편과 똑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MBTI가 같고, 남편들끼리도 MBTI가 같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 까?


다정함에 대한 입장차이


절친과 나는 다정한 남편을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정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완전히 다른 입장에 있었다. 예를 들어 친구와 나는 둘 다 F지만 원하는 공감의 방법이 달랐다. 친구는 마음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을 원한다. 자신이 힘듦에 귀 기울여주고 '따뜻한 말'이라는 이불을 상처받은 마음 위에 덮어주기를 바라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힘듦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의 시선도 내 힘듦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힘들어서 어떡해"라는 말은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다. 어떨 때는 냉정한 시선으로, 어떨 때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와 함께 고민해 줄 때 오히려 내 편으로서 마음을 써줬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T는 해결하려고 해서 상처받는다고 하지만 나는 T 식의 위로가 오히려 마음을 함께 해주는 위로로 느껴진다.  "힘들어서 어떡해"는 내 시선에 있지 않은 느낌이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여기서 '갑자기' 수수께끼를 내보고 싶다. 현재 결혼한 사람들 중에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혼하지 않고, 누군가를 속상하게 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말이다. 답을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의 배우자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사람이 된다. 만약 시도하는 것이 어렵다면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는 방법도 있다. 남편이 미워 보일 때, 남편 때문에 아~주 속 썩는 옆집엄마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힘들다는 건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다르다) 그리고 내 상황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집안일을 조금 도와주는 남편도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꽤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올라올 때 ‘비교’를 활용한다. 그리고 남편의 장점을 떠올린다. 모든 게 그대로지만 관점은 이렇게 손쉽게 내 세상을 바꾼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을 그냥 받아들인다. 상대주의에 따르면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것이 유일한 진리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내가 보이는 것이 유일한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말은 더 좋은 답과 더 좋은 관점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좋은 걸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 절친의 경우에도, 내 기준에서 절친은 이미 다정한 남편과 살고 있었다. 물론 소소하게 들어가면 느낌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친구 남편의 위로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충분히 그랬다. 절친과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다정한 게 그런 것처럼'이라고 말한다. 만약 남편을 바꿀 수 없지만 내 관점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괴롭지 않아도 될 새로운 대안이 되기도 한다. 나와의 대화로 남편의 다정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친구의 말처럼 말이다.  


내 고정관념, 신념에 대한 고백


나는 가족에 관해 어떤 고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이해받을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가끔 누군가를 괴롭게 만든다. "가족은 그대로 이해받아야 한다는데 나는 왜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우리 집은 왜 이렇지?", "가족은 있는 그대로 이해받아야 하는데 난 그렇게 해주지 못하고 있구나" 사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단점의 빈도가 너무 잦으면 큰 크기로 나에게 다가온다. 가정에서 내가 있는 그대로 이해받기 어려운 상황은 다양하고도 많다. 극단적인 예로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나르시시스트인 경우가 그렇다. 이럴 때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평소에 괜찮던 사람도 힘든 일이 생기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기적이면 시선이 좁아진다. 시선이 좁아진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상황을 이해하기에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힘이 없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 상황이 아니라면 한 번쯤 관점을 전환해 볼 만하다. 낯설게 보기. 갈등이 생기거나, 불만이 생겨날 때 내가 했던 방법이다.


엄마에게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가 필요한 이유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를 채우려는 노력이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를 진짜 맑은 물로 채우고 싶을 때에는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수다. 요즘에는 너무나 쉽게 좋은 말들과 좋은 영상을 접할 수 있다. 새로운 관점을 내 삶에 적용하고, 삶을 살아낼 때만 그 관점이 진짜 나에게 온다. 예전에 아이들을 키우며 너무나 힘든 순간이 있었다. 육아가 힘들다는 것이 디폴트값이라는 걸 감안해도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그때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있었는데 순간 우주의 시선으로 지금의 내 상황이 바라봐졌다. 백 년이 흐른 뒤 우주의 시선으로 지금을 바라본 것이다. 그러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조그만 아이의 발을 만질 수 있고, 조그만 아이의 몸을 내가 꽉 안아줄 수 있는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살갗을 대고 손을 마주할 수 있는 이 순간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엄마들에게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육아를 하는 시기는 너무나 힘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순적이게도 이 시기를 즐겁고 심플하게 헤쳐나갈 방법들이 필요하다.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Mom's Enjoy these moments!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관점의 물동이가 필요하다. 다양한 관점은 결국, 지금의 소중함을  알아차리게 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의 종착지는 지금의 소중함을 깨닫는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최고의 가족구성원과 함께하고 싶다면 내 관점만 바꾸면 된다.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 하지만 사실 쉽지만은 않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나의 상처를 들춰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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