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의 물동이
나는 대화하는 부부사이를 꿈꿨다. 하지만 연애 때의 남편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남자였다. 장남에 과묵한 남자가 내 스타일이긴 했지만 과묵한 남편을 상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과묵한 남자에게 반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으니 나는 과묵한 남편과 살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직장동료였다. 연애할 때 회사가 어려워진 적이 있었고 나는 권고사직을 받았다. 그 후에 우리는 결혼을 했고 신혼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대화를 하다가 몇 달 전 남편의 직장에 큰 이슈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다녔던 직장이니 당연히 나에게도 공유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남편에게 왜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별일 아니라서"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해 본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재미를 붙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 대화하기 프로젝트
내가 한 프로젝트의 목표는 '남편이 대화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었다. 예전에 맹수가 사냥을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맹수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사냥감을 관찰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이 왔을 때 사냥을 시작했다. 나는 그 방법으로 남편이 어떤 주제를 먼저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남편이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주 크게 리액션을 했다. 남자들은 생각보다 큰 리액션에 약하다. 남편이 신나게 말을 하고 나면 또 이렇게 리액션을 했다. 그리고 나면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시시콜콜한 대화가 조금씩 재미있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남편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나의 경우 100% 남편이 흥미 있어하는 주제로 질문을 시작했는데 군대이야기라던지, 예전에 살았던 동네 이야기라던지, 남편의 어린 시절이나 친구들에 관한 질문이었다. 특히 군대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남편을 발견했다. 그래서 남편이 헌병이었어서 헌병이 하는 일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군대에 대해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물었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는 정말 사람을 많이 때리는지, 간식은 어디까지 허용되고, 또 허용되지 않는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보았다. 물론 위와 같은 리액션은 필수다.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하는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다. 그러면 이야기에 재미를 붙이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만 이것은 글로 읽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끈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전파한 방법이지만 아직까지는 성공한 사람이 없다. 첫 시도에 힘들다고 느끼는 듯했다. 남자들마다 반응과 효과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이 자신의 이야기에만 취하고 상대에게 공감이 결여된 대화를 한다면 또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여성심리학과 노인심리학, 아동심리학은 있지만 남자심리학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자심리와 아동심리가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사실 처음 심리학이 나왔을 때가 일반의 기준이 남자였기 때문에 남자심리학이 없었던 것이긴 하지만 누구나 이 말을 하면 웃음을 터트린다. 남자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공감을 모른다면 싸우지 말고 알려주면 된다. 정말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지에 의도를 붙이면 싸움이 된다. 여자들은 남편에게 공간감각을 배우면 되고 남자들은 아내에게 공감을 배우면 된다. 남녀로 부족한 부분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서로에게서 잘하는 부분을 배우면 그걸로 된다. 아무튼 마법 같은 이야기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남편은 수다쟁이가 되었다. 내가 언제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깨닫게 되었냐면, 남편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듣기 힘들어진 순간에 깨달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남편은 내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대화는 끈기 : 연애 때의 싸움
남편과 나는 연애 때 자주 싸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싸울 때마다 끝장을 봤다. 싸우기 시작하면 새벽까지 통화가 이어졌는데 누구 하나 전화를 끊고 잠수를 타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통화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싸워대면서도 상대에 대한 예절(?)은 지키며 싸웠던 것 같다. 전화를 끊거나 잠수를 타지 않았으니 말이다. 첫 째가 세 살, 둘째가 한 살 일 때 왕할머니 댁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부부는 왜 사이가 좋은가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 우리의 결론은 이거다. 우린 끈기 있게 잘 싸웠다. 지난한 대화 속에서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왜 이 단어가 힘든지를 구석구석 알아갔다. 그래서 한번 싸운 이슈로는 다시는 싸우지 않았다. 끝까지 싸워봐서다. 나는 예전에 개선 없는 반복이 지옥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관계에서도 개선 없이 반복되는 것, 성과에서도 개선 없이 반복되는 것은 분명한 지옥이다. 우리 부부는 적어도 지옥에서는 살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 과정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 부부를 만들었다. 개선을 하고, 개선을 하니 이제 좋은 것만 남게 된 것이다. 사실 끈기 있게 싸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남편이 나를 이겨먹으려는 집념과 남편의 논리를 꺾고 말겠다는 집념이 만나서 우리는 꺼지지 않는 불길처럼 오래 타오르며 논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흥분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아주 싸우고 있지만 흥분하지 않는 척하면서 싸우는데 그것 또한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우리만큼 이겨먹으려는 집념이 없었다. 나는 이 것도 끈기라고 생각한다. 싸울 때 옹졸해지는 얼굴을 보면 피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피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 과정이 지나면 서로를 이해해 나갈 수 있다. 좋은 것은 쉽게 오지 않는다. 모든 대화를 몇 년에 걸쳐 해낸 우리는 요즘 한 사람이 옹졸해지기 시작하면 자리를 피한다. 이제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그 감정을 소화하도록 기다렸다가.... 나중에 놀린다.
끈기의 물동이로 알아낸 것
우리는 같은 언어에 다른 경험을 담는다. 연애 2년 차에 (우리는 연애 5년 하고 결혼을 했다) 남편과 내가 또 새벽까지 싸운 일이 있었다. 그때도 우리의 끈기와 집착이 발동했다. 한창 싸우다가 우리가 왜 이걸로 싸우는지 의아해져서 대화를 거슬러 올라가며 어디서 갈등이 시작되었는지를 역으로 찾아갔다. (과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랬더니 내가 '질투'라는 단어에 화가 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남편이 질투라는 단어로 나를 표현해서 화가 났고, 남편은 그게 왜 화가 날 일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질투가 부정적인 단어라서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냥 상황을 설명하는 말인데 그것이 왜 부정적인 말이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질투라고 하면 집착적이고 별로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냥 자연스러운 감정에 귀여운 느낌으로 한 단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각자가 다른 의도를 담아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쓰는 단어에 발작버튼이 눌러져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질문을 하거나 내 기분을 설명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나 지금 그 단어 들으니까 기분이 안 좋아지는데, 나는 그 단어가 이런 상황에 쓰인다고 생각하거든? 오빠는 왜 이 말을 쓴 거야?"라고 물어본다. 물론 내가 생각한 기분 나쁜 의도로 썼다면 약간의 언쟁이 되겠지만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공유하지만 다른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알고 나니, 우리 부부는 오해로 싸우고 오해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엄마에게 끈기의 물동이란?
엄마가 끈기의 물동이가 있으니 남편과 사이가 좋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어려운 점이 생겼을 때 그것을 길게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끈기로 갈등을 풀어간 과정은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해본 것이다. 그러면 다른 갈등들이 무섭지 않아 진다. 그래서 처음이 제일 어렵다. 이 것이 얼마나 길어질지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이다. 신혼 때 부부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큰 싸움이 될 확률이 높다. 지금 하는 싸움에 따라 앞으로의 결혼생활이 좌지우지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늘 말하지만 결혼생활은 마라톤이다. 생각보다 지금 당장 결판내어야 하는 일은 없다.
신혼 때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는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할 잔소리를 참았는데 불구덩이를 삼키는 듯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생활방식이 달라서 잔소리하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았다. 식탁 위에 놓인 쓰레기를 보면 제발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잔소리를 뱉어버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말이 속에 머물러 있으니 용암을 삼킨 듯 답답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소리 내어 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니 잔소리를 참는 게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5번 참고 5번째에 얘기하고, 10번 참고 10번째에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몇 달을 지나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오빠 이건 말해도 잔소리밖에 안 되니 말하지 않았거든... 그때 우리 이렇게 하기로 얘기를 나눴는데 몇 달째 해주지 않아서 이제 좀 화가 나려고 하네"라고 말하면 남편은 대부분 납득을 한다. 지난 세월이 이미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 번만 견디면 된다. 그러면 다음은 조금씩 쉬워진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이 관계를 적용해 볼 수 있다. 가끔 아이들에게는 걱정 때문에 내 시선이 짧아지기도 하지만, 이 경험은 다시 나를 긴 시선으로 돌려놓곤 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한 번쯤 감내해 보았으면 좋겠다. 용암을 삼키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참아보았으면 좋겠다. 한 번만 시도해 보면 그다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산을 건너면 평화의 벌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건 우리가족 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꽤나 뿌듯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