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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18. 2021

질투도  못났고 주눅도 못났다.

인생은 균형. 중심엔 내가

어린 시절의 나는 질투와 주눅이 혼재되어있는 삶을 살았다. 어쩌면 철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이유도 이 양가감정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질투는 공격적인데 주눅은 수동적이다. 이 두 감정이 어떻게 내 속에 공존하는지 의문이었다.


사실 그 이유는 책 몇 권만 읽어봐도 아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수없이 읽었던 구절이 마음까지 와 닿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통찰하지 못했다. 끄덕끄덕 아는 체하는 지식과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지식은 다르다.  실천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그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낮아 질투를 했고, 자존감이 낮아 주눅 들었다.


그렇다면 자존감을 어떻게 아가고 있냐고? 여러 가지 노력이 있었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 사람들 때문이다.  명은 남편이다. 깊어서도 있지만 단순해서. 가끔  단순한 사람들이 마음을 치유를 해준다.  명은 오래된 친구인데 사회생활을 하며 변해가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친구다. 드라마틱한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영향을 주는 타인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명확한  그동안  자존감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주변 사람들이  자존감을 세워줄  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에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남편과 친구의 진가를 알아봤다. 주변에  없이 괜찮은 남편과 아내, 친구가 많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러기 위해서  인정하는  필요하고 그래야 좋은 상대도 인정할  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는 사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만큼 어렵다. 하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보다는 쉽다. 세상 사물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첫걸음이다. 나를 그대로 인정해야 자존감을 올릴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상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려운 건 아니다. 한 템포 더 해석하는 것을 멈추면 된다.


좋은 예) 잘하는구나 끝!

안 좋은 예) 잘하는구나, 욕심이 많네.


 질투가 정말 많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이면에 있는 초라한 자존심과 소통불능의 통제하고자 함이 함께 보인다. 질투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무거운 마음을 벗어던지는 것. 그래서 나와 함께하는 타인과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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