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의 도전기
여행을 통해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느끼고, 편견을 깨었던 순간들이 기억납니다. 아마 내가 살던 곳을 벗어났기 때문이겠지요.
첫 번째 기억은 영국에서 경험한 순간입니다. 지금보다 약 16년 전 일이네요. 그날은 제가 숙식을 했던 영국 시골 마을 보튼에서 나와 영국 휘트비(whitby)라는 작은 마을을 구경하던 때였습니다. 영국 휘트비(이하 윗비)는 소설 드라큘라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그때 긴 계단을 올라 소설 드라큘라의 배경이 된 장소를 구경했던 기억이 사진처럼 남아있습니다. 윗비는 영국 북구 요크셔 해안마을인데요. 여기에서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맛있는 피시앱칩스를 바다 보며 먹었습니다. 아주 노련한 갈매기들과 함께요.
그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디저트와 카드를 파는 가게를 지날 때였는데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엽서를 고르는 모습과 또 다른 할아버지가 컵케이크 집 앞에서 컵케이크를 아주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을 본 순간입니다. 누가 봐도 그 할아버지는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다름 아닌, 엽서와 컵케이크를 고르는 일이었고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우리나라 기준) 저렇게 진지하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낭만을 아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엽서를 진지하게 고르고, 오늘 먹을 컵케이크를 고르는 일이 부끄럽거나 유치하지 않다는 걸 스물세 살의 제가 깨달아버린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저는, 절대 알지 못했을 깨달음이었겠지요. 삶 속의 낭만이라는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 영국 사람들의 낭만이 보였습니다. 런던에서는 혼자서 여행했습니다. 여행스케줄을 타이트하게 잡지 않는 편이라 어슬렁어슬렁 유명한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영국 런던 패션스트리트에 있는 백화점인지, 쇼핑몰인지 모를 공간의 외부 전시가 화려해서 눈길을 끌었었는데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어서 외부전시를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오랜 시간 서로 대화하며 보는 모습이 생소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라면 지나칠 만한 풍경이었거든요. 카메라를 든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전시에 집중해서 대화를 나눕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머물고, 어떤 사람들은 보고 적당히 지나치며 그 자리의 공간을 감상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지나가고 외부전시 앞에 서서 아까 저분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 적 추억을 꺼낸 것이라 상상하며 저 또한 그들의 흉내를 내며 한동안 서있어 보았습니다. 이후로는 새로운 디스플레이나 작품들이 익숙한 길가에서 발견되면 잠시 멈춰 바라보게 됩니다. 부산에 한때 '걷는 사람들'로 유명한 줄리안오피의 작품이 많이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해운대 역 주변과 예스 24 수영공장 앞에 설치가 되었었고요. 가끔 특이한 조형물이 보이면 멈춰 서서 보는 것도 그때 '이런 삶이 있구나' 하고 흉내 내보다가 생긴 버릇입니다.
두 번째 기억은 판테온을 보았을 때입니다. 사실 사진에 있는 스물세 살에 본 판테온은 저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것이 판테온이구나' , '그때 해설사가 말한 건축물이구나' 정도가 끝이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건 두 번째 판테온을 만났을 때입니다. 남편과 저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남편과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남편도 유럽은 가본 적 없다며 좋아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판테온은 저에게 새로운 감각을 깨워주었습니다. 어떤 감각인지 궁금하시죠? 실제로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귀와 머릿속에서 소리가 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첫사랑을 봤을 때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 나거나, 핀 조명을 쏜 것처럼 그 사람만 보이는 효과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두둥' 하는 소리가 들리며 판테온이 슬로모션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혹시 이 경험해 보신 분 계실까요? 착각은 아닙니다. 남편은 들리지 않았다고 했거든요. 왼쪽에서 판테온을 바라보며 들어올 때였습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효과음처럼요. 그 감각은 의외로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길고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세 번째 기억은 시간이 달라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유럽 시골 마을에서 생활할 때 해가 지면 할 것이 없으니 자연스레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노력 하나 들이지 않고 새벽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시골에는 자극이 하나도 없으니 내 감각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풀을 밟고, 아주 긴 길을 걷습니다. 중간에 간판도 없으니 지형으로 내가 어디쯤 왔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사락사락 내가 걷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하루를 감각에 집중하여 충실히 보내자, 밤에는 미련 없이 잠에 들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앨런 라이트맨이 쓴 『아인슈타인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 같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에 영향받으며 흘러갑니다. 이 경험 하나로 저에게는 하나의 결핍이 생겼습니다. 도시에서는 메울 수 없는 아주 작은 결핍이지요. 그럭저럭 놀러 다니며 채웠지만 마흔을 앞두고는 진짜 삶을 살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경험을 꼭 남편에게, 그리고 간접적으로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수는 있겠지만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마다의 느낌과 감정으로 소화해 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화하는 경험을 꼭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경험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친구와 함께했던 이모들이 그리운 것 말고는 괜찮은 편입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이야기 많이 만들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