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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온 것은 필연이야

육지를 떠나 섬으로

by 말로이

제주도에 온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짧게 말할 수도 있고, 길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짧게 말해본다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계속 미루다 보면, '갈걸'을 반복하는 껄무새가 될 것 같았거든요. 가고 싶은 마음을 접을 수는 없으니까요.


길게 말한다면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할까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간판으로 길을 인지하는 삶이 조금은 지겨워졌습니다. 얼마나 걷고 있는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느낌 없이 OO 빵집을 지나, OO 병원을 지나는 삶이 지겨워졌습니다. 무슨 유난이냐 말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집 앞 거리를 생각하면 간판과 가게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갑자기 그것이 왜 갑갑하게 느껴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제주도에 가고 싶어서 현재가 갑갑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합니다. 한적한 곳에서 가족과 서로에게 집중하며 지내보고 싶었습니다.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아 보고 싶었고요. 한 번쯤 인구밀도가 높은 아파트를 벗어나 주택에서 내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욕구가 크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서 살고 싶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수영을 참 좋아합니다. 초, 중학교 때는 수영선수였습니다. 인명구조 자격증도 있습니다. 20대 때는 한 번씩 물놀이를 갔는데요. 결혼하고는 아이들 챙기느라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버킷리스트에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놀이를 실컷 하기 위해 제주도에 오기도 했습니다. 남편도 저처럼 자연을 좋아합니다. 거창에 있는 왕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시골살이에 대해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6월에 부산에서 살던 집이 팔리고 망설이는 저보다, 제주행에 더 적극적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반반이었습니다. 설레기도 하는데 걱정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날은 “제주도 너무 가고 싶어!!! 못 기다리겠어!!! “라고 말했다가 어떤 날은 ”친구들과 헤어진다니 안 가면 안 될까?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감정이 모두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정든 친구들을 떠나 전학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결정으로 아이들이 힘들어할까봐교. 하지만 평소에 첫째와 둘째가 전학 온 친구들을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스스로 쌓은 덕으로 잘 적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제주도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넓은 자연을 보며 뛰어놀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집은 두 달에 한 번씩 거창에 있는 왕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그렇게 시골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왕 할머니 댁에서 뛰어논 날은 아이들이 평소보다 밥을 두배로 먹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시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학교와 유치원을 마치면 매일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서 놀았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놀 때처럼 배고프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하교 후에 학교 주변이나 놀이터에서아이들과 간식을 나눠 먹는 부분도 영향이 크겠지요. 시골 넓은 공터에서 마음껏 뛰어놀다가 돌아왔을 때는 문득 사람이 많은 도시가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로 저희 아이들도 남편처럼 수영을 정말 좋아합니다. 수영장이 있는 펜션에 가면 밥 먹을 때 빼고는 계속 물속에 있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수영 하러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 수영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부담될 때도 있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산의 해수욕장에서 잘 즐기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장이나 송도로 자주 가기는 하지만, 뒤처리가 불편해서 자주 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주도에 사는 아는 언니가 통화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 아이들이 바다 좋아하면 제주도 좋지. 학교 마치고 맨날 바다에서 놀았어. 집에 와서 씻으면 되니까” 이 말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리던지요. 수영한 채로 집으로 오면 되니까요. 자동차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차를 사용하는 편이라,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교 후 수영이라니요. 영화 같지 않나요? 제주도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로 제주도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골 학교이자, IB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IB 때문에 제주도에 왔다기보다, 제주도를 생각하고 IB를 알게 된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IB에 관한 책과 영상을 보았습니다. 생각을 해보고, 생각을 말하고 협동하며 답을 찾아가는 교육이라 좋습니다. 어릴 때는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마음껏 읽고, 쓸데없는 고민도 해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달리기에 비유해 보자면 유튜브에서 알려주는 대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선 마음껏 느리게도 뛰어보고, 빠르게 뛰어보는 경험도 해보면서 어떻게 뛸 때 나의 페이스인지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경험하고, 또 궁금하면 스스로 유튜브를 찾아서 다양한 방법을 적용해 보면서,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시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은 “그러면 늦지 않겠냐”, “나중에 따라잡기 힘들 거다” , “시골 학교 다니다가 도시로 와서 경쟁하기 쉽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는데요. 그 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그들이 사는 세계가 아닌, 자신들이 사는 세계를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주도로 온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 것도 압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있을 거 생각합니다.


초등 시기까지는 할 수만 있다면 가족끼리 오롯이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가족끼리 오롯이 지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 시간 아이들 기억 구석구석에 가족의 사랑을 심고 자신을 키워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골은 저에게 이런 생각을 더욱 잘 실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시에 있든, 시골에 있든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저는 시골이 가족끼리 머물기 좋은 환경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다음 편에는 왜 타지살이하고 싶은지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신 분들이 계실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러하시다면 다음 편에도 댓글 많이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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