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내리는 날,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네~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요.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편과 처음 나누었던 대화는 "진짜 여행이 되었네"였습니다. 당장 숙소를 어디에 잡을지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숙소를 바로 찾아보기엔 새벽이었고, 나중에 이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채로 우리의 제주도 첫 번째 집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첫 번째가 될지, 마지막이 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남편과 제가 1박 2일을 돌아보고 정했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집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가 우리가 살 집이야?"라고 말하고는 텅 빈 집안에서도 놀이를 찾아 놀기에 바빴습니다. 차에 부산에서 마지막 날 받아온 선물이 한가득입니다. 아이들이 그 선물을 뜯으며 한참 시간을 보냅니다. 그 시간 동안 캐리어에 챙겨 온 각종 청소도구를 꺼내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층집이긴 하지만 평수가 넓지 않아 청소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선물 정리하기에 열을 올리던 아이들도 곧 청소하기에 합류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청소를 한 덕분에 입주청소(?)는 금방 끝이 났습니다. 관리를 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그런지 집안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더라고요. 청소를 끝내니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니 김밥을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다행히 일찍부터 김밥을 파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갔습니다. 바깥에서는 매장 안에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보이지 않더라고요. 비바람이 부는데 남편이 먼저 매장에서 식사가 가능한지 확인을 하고 옵니다. 매장에서 식사가 가능한 걸 확인하고, 써도 소용이 없는 우산을 아이들에게 씌우고 김밥집으로 향했습니다. 김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맛있는 김밥집이 동네에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각종 선물 포장지와 청소 잔해들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쓰레기 버리는 장소가 따로 있다는 말에 긴장하고 있던 터라 쓰레기처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부산에서 하던 대로 봉지와 봉투를 이용해 쓰레기를 분리해 두었습니다. 플라스틱, 종이, 비닐 일반 쓰레기로 나누어졌습니다. 그 순간, 아파트 1층에서 내려가 쓰레기를 버리던 일상이 얼마나 편리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11시 30분에는 부동산계약을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부동산 계약을 하며 부동산 사장님께 여러 가지 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새로웠던 정보는 제주도는 티머니카드를 구매해서 음식물쓰레기 비용을 그때그때 처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통카드를 결제하듯 음식물 쓰레기를 결제하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클린하우스'라는 어플에 대해서도 알아갑니다. 이전에도 제주도 동네를 계속 돌면서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를 다양하게 보아왔습니다. 클린하우스를 통해서 보니 제주도는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더 알아보니 재활용도움센터에서는 요일 상관없이 쓰레기 배출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동산 계약 후 쓰레기를 분리 배출해서 버리기로 합니다. 처음 제주도 오시면 부동산 사장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비가 그치자 혹시나 이사업체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이미 직원들이 퇴근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도 포기하고 숙소를 예약하기로 합니다. "와 여행이다!"라고 쾌재를 부르던 저는, 숙소를 예약하는 순간 돈이 아까워졌습니다. 사실 오늘 이사했다면 지불하지 않았을 돈이니까요. 하지만 인생에는 가끔 이런 이벤트들이 있고, 돈을 잃는 순간에 기분을 잃지 않을 선택권은 늘 나에게 있습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즐기기로 합니다. 숙소에서 먹을 음식을 사러 동네 마트로 갔습니다. 동네 마트에 없는 게 없더라고요. 제주도로 온다고 평소에 먹던 조미료 등을 사 왔는데 그러지 않았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에 온 기념으로 귤을 한 통 담았습니다. 숙소에서 까먹으면 제주에 왔다는 느낌이 들겠다 생각하면서요. 아이들이 먹을 것도 고르고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씻는 것입니다. 배에서 1박 2일을 하느라 씻지를 못했거든요. 다행히 '혹시나 병'이 걸린 제가 하루 정도의 속옷과 아이들 내복을 모두 챙겼더라고요. 배에서 갈아입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전날 제가 싼 짐 덕분에 모두 산뜻하게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늘 "그런 것까지 챙기냐"며 웃던 남편도 이날만큼의 저의 준비성을 칭찬해 줍니다. 늘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는 저를 보고 웃었었거든요. 대신 '혹시나 병'이 미치지 못한 로션과 화장품류는 하나도 없어서 남편과 얼굴이 당기는 채로 1박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칫솔이 있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샤워하고 에어컨을 들고 각자의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얼굴 피부가 당기는 감각을 뒤로하고, 남편은 잠을 잤습니다. 저 또한 짐을 좀 정리하고 잠에 들었고요. 부산에서부터 계속해서 무리를 해서 그런지 둘 다 몸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남편은 낮잠을 잘 자지 않는 편입니다. 남편이 낮잠을 잔다는 건 몸이 안 좋거나 아주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저도 숙소 들어오기 전부터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피곤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티브이를 보며 잘 지내주어 남편과 저는 급한 피로를 풀 수 있었습니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그런지, 티브이의 효과가 꽤 좋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온 가족이 티브이 앞에 둘러앉아 먹을 것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 아침 일 이사를 해야 하거든요.
문득 내일도 오늘처럼 비가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주도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타지에 와서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유럽에 놀러 갔을 때처럼 설렘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삿짐을 받으면 짐이 어떻게 정리될까? 하는 부분이 저의 큰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로 오면서 넓은 평수로 가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비슷한 아파트로 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의 경우 수납이 없는 주택으로 이사를 왔으니까요. 수납이 되기 전까지는 중간고사를 앞둔 대학생처럼 놀아도 노는 게 아닌 기분을 걷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내일 그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후 느낀 후련함을 얼른 맞이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베개에 머리를 대자 금방 잠에 듭니다.
저의 장점은 웬만한 걱정은 베개에 머리를 눕히는 순간 "내일 생각하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성격 덕분에 이사 전날 꿀잠을 자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잠이라도 잘 자서 늘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이삿짐은 무사히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