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과 대화를 통한 생각
제주도에 오면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대화를 하고,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질문을 들었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제주도라는 섬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도 제주도에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제주도에는 별로 오고 싶지 않지만,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에 "좋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제주도로 가는 걸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왜 제주도에 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궁금증을 표현했고요. 각기 다른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시다니 대단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분은 편리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사는 걸 희생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이런 대화를 할 때 저는 재미있습니다. 또 다른 행성을 발견한 것처럼 상대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거든요. 그분의 시선으로 저를, 아이를 위해 제주도까지 가는 엄마로 봐주시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본다면, 저와 남편이 좋아서 제주도행을 결심했고, 아이들이 따라주었을 뿐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성향을 고려하고, 대화를 통해 결정한 것이기는 하나,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요.다행히 현재 아이들이 매우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연이어 "이렇게 좋은 도시의 편리함을 두고, 요즘에는 시골 가서 살려는 사람은 잘 없지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분은 지금의 생활에 꽤 만족하고 계시는 것 같아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시골이 '편리함에서 벗어난다'가 아닌, '새로움'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니, 제주도가 새로운 것처럼,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부산이 새로울 수도 있겠지요. 그런 새로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제주도가 매력적인 이유는 '제주도라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저에게는 제주도가 새로운 공간, 새로운 타지의 의미이기에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새로움에 대한 가치가 누구나 같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함이라는 감각이 더 안정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저에게 익숙함의 감각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은 싫증 내지 않지만, 환경에는 싫증이 나기도 하고요.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부산 어느 동에 무슨 가게가 있는지, 어떤 지역에 가게 되면 어디를 들렀다 가야 하는지를 모두 압니다. 동네마다 병원이 즐비해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백화점도 있고요. 부산 근교인 기장에 가면 이케아도 있고 아웃렛도 있고 롯데월드 부산도 있고, 다양한 카페와 맛집들이 있습니다. 또 다른 근교인 김해에도 워터파크도 있고 큰 아웃렛도 있지요. 제가 아는 최고의 장어 맛집도 있습니다. 확실한 편리함이기는 하지만, 익숙한 곳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시골 제주도가 아닌, 새로운 삶의 터전인 제주도로 옮겼습니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시다니 대단해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가 꽤 즐거웠습니다. 제가 무엇을 추구해서 제주도에 갔는지를 생각하게 했거든요. 의견이 달라도 이런 대화는 즐겁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주도를 왜 가세요?" , "집안이 힘들어졌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들을 까봐 아이를 멀리 보내고 조심히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서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아니요. 아이들도 자연에서 뛰어놀고, 남편과 저도 좋아서 가요"라고 밝은 얼굴로 말씀드렸지만, 그분의 얼굴에 먹구름은 걷히지 않습니다. 애써 밝은 척하는 사람으로 보시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제주도에는 집안이 힘들어지면 간다는 말이 있나?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진짜 마음은 걱정과 관심이라는 걸 잘 압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내가 힘들게 보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분의 경험에서 나온 편견일 수도 있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애써 인사를 하러 갔다가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더라고요. 그러나 그때는 곧 제주도행을 앞두고 있으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 하고 금방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한동안 똑같은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람의 성향이 잘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사를 할 때도 건네는 말이 다릅니다. 이사 전날 부산에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내일 비가 와서 어떡해. 좋은 날에 이사 가는데"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가 오면 잘 산대요"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일 이사 잘하세요 ^^"라고 밝게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각자가 반응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밝은 에너지의 말이 듣기가 좋았습니다.
아이 초등학교에 가는 것에도 다양한 반응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시골학교에 아이를 보낼 자신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분은 대형 학원의 강사셨는데요. 하루하루 아이들이 진도 나가는 속도와 뒤처지는 아이들을 보니 거기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생각은 자유롭게 키우고 싶지만, 아이들의 진도를 매일 마주하다 보니 쉽게 되는 일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런 교육을 받아보면 좋겠어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요. 제 친구는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게 IB야!" 라며 IB에 대해 더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좋다! 정말 부러워. 아이들 어릴 때 나도 가봐야 하는데! 그런데 걱정이야. 시골에서 지내다가 부산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이 이 경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라고 말이지요. 저는 모든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 '아이들'이니까요. 그렇다면 시골 학교에서 행복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엄마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기도 했고요. 이런 의견들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대신 흔들릴 필요는 없겠지요.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누군가가 도전하거나, 변화가 이루어질 때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도전이나 변화에도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그 도전과 변화를 시작할 때 단점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그러니 단점은 본인이 더 잘 알겠지요. 제주도로 오는 과정은, 내가 그동안 다른 사람의 도전과 변화에 어떤 말들을 해주었나를 뒤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에 가장 힘을 받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요. 이런 의견들을 감정적으로 받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도움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니까요. 제주도로 오기 전 다양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제주도로 가는 이유를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