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의 삶과 시골 주택에서의 삶의 차이
제주도로 온 이유가 많다고 전에 말씀드렸지요? 조금은 더 솔직해져 보고자 합니다. 제주도로 이사 온 이유 중 하나는 아파트 문화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혼자 있거나, 가족끼리만 머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제가 사는 아파트에 단지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가서 좋은 분들을 만나니, 아이들과 머무는 시간이 많이 부족해졌습니다.
첫째가 아파트 주민들과 지내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좋은 분들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아파트 주민들이 대부분 모난 사람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질문 없이 나오면, 즐겁게 놀고 들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대화를 하지 않아도 자주 부딪히면서 피곤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가끔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다 보면 우리 아이들을 초대해 주십니다. 그러면 감사의 뜻을 표하거나, 우리 집에 초대를 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육아를 하며, 제 에너지를 파악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 소진이 많더라고요. 아이들이 중요한 시기라 모든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쓰는 편입니다. 그래서 관계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 시간 내서 만났고요. 그러나 저희 딸이 초등학생이 되고, 아파트 한정 외향적이 되면서 다른 집에 놀러 가는 걸 즐기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건 학교에 가면 다시 얌전해집니다. 아파트에서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도 그 아파트로 다시 갈까?라고 생각해 볼 정도로 만족하는 아파트였지만, 사람과의 거리가 필요한 저에게는 조금 피로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많아지면서 엄마는 '거절'하는 사람이 되는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모든 면에는 장단점이 함께 있습니다. 장점만 있는 것도 드물고, 단점만 있는 것도 드뭅니다. 그 아파트에 지내면서의 장점은 저희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친화적으로 말을 걸고 소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디를 가든 인사도 잘하고, 매표소 직원이나 관광지 직원분들께도 말을 잘 겁니다. 어른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일 거라는 믿음이 있는 행동입니다. 대신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않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실제로 교회에서 간식을 주며 오라고 했을 때 모든 아이가 갔지만 딸은 가지 않았다고 전화하며 집으로 오더라고요. 또 다른 장점은 제가 형제자매가 없습니다. 아이들도 이모가 없는데요, 자매들에게 좋은 이모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실제로 엄마 관계를 지양하고, 엄마로서 좋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좋은 이모들을 만나서 아이들에게 든든한 존재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아파트에서 가까이 지내는 엄마는 두 명 있었습니다. 한 집은 자매가 모두 나이가 같고, 한 집은 둘째만 나이가 같습니다. 첫째는 나이가 같은 친구와 다니며 학교에 혼자 가는 법을 빨리 배웠습니다. 낯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갈 때마다 적응이 어려운 아이였지만, 초등학교는 그 친구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든든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덕분에 학교적응도 빠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가 있으니,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과 놀지 않아도, 난 OO이가 있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런 든든함 덕분에 딸들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세 가정의 아이들이 두 발 자전거를 모두 함께 뗐습니다. 한 명이 익히면 다른 친구를 도와주면서 하니 금방 익히더라고요. 두발자전거를 탈 생각이 없는 친구들도 모두 두발자전거를 떼었습니다. 그래서 7살 초반에 모두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롤러스케이트도 그렇게 익혔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는 명암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자주 지내다 보니, 아이마다 발달 시기나 성장 시기가 다릅니다. 거기에 대한 엄마들의 대처도 각각 다르고요. 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너무 가까워지면 피로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때 잠시 아이들을 만나게 하지 말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에 따라 아주 무례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요. 기분은 나쁘셨겠지만, 그렇게 아이들을 잠시 떼어놓는 시기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는 잘 맞는 성인으로 만나기 전에 엄마로서 만났으니까요. 감사하게도 수용해 주셨고, 각자의 아이를 잘 키우다가 다시 만나 잘 조율해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첫째 아이의 불만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모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에 혼동이 온 딸은, 비교를 통해 엄마에게 불만을 품기 시작하더라고요. 저의 포지셔닝이 '엄마는 들어주지 않는 엄마' , '이모는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계속 놀고 싶어 하는데 엄마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게 되고, 상대 이모는 아이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조금 더 놀자고 말하는 것이 반복됩니다. 상대도 그렇게 해주었으니, 저 또한 반대로 그렇게 할 때도 있고요. 첫째 딸의 불만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딸들한테만 보인 현상은 아닙니다. 각자의 딸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더라고요. " 왜 엄마는 나에게만 뭐라 해?"라고요. 또 누구보다 좋았던 자매의 사이가 조금은 나빠졌습니다. 또래들과 다 같이 놀다 보니 첫째는 친구와 놀고 싶으니, 둘째를 혼내거나 멀리하는 일이 생깁니다. 자매는 싸우며 자란다지만, 저는 분명 다른 선택지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확정은 없던 시기지만, 이런 고민 속에서 집이 팔리자마자 남편과 제주도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불만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이유가 핵심 이유는 아니지만, 간 김에 가족끼리 온전히 지내는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아파트를 가든 친구를 사귈 시세로 변한 자매에게 조금은 다른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시골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큰 변화는 저녁시간이 달라졌습니다. 부산에서 아이들은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아파트에서 자전거와 씽씽이를 타다가, 놀이터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놀 때도 꽤 있었고요. 그러면 엄마들도 아이들을 보느라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체력이 좋은 아이들이라 늘 "더 놀면 안 돼?"라는 말을 했고, 저는 "이제는 들어와야 해"라는 말을 반복했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른 이모의 초대에, 이모 집에 갑자기 가서 놀고 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 집에 그렇게 자주 간다는 것이 엄마로서는 불편했습니다. 그 상황으로 인해 "좋은 이모"와 "안 된다고 말하는 엄마'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날도 자매가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아파트지만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자주 가는 이모 집 앞에 아이들 자전거가 세워져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이모네와 함께 나왔습니다. 그러자 집에 초대해 준 이모가 그러시더라고요. "아이들 좀 자유롭게 놀게 해 주지, 왜 그렇게 애들을 잡아요~"라고요. 그 순간 이모가 자매 편을 들어주기 위해 건넨 말들에 엄마가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마음이 불편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제주도에 오기 2주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제주도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아파트에 이사가거나, 이미 친해져버린 엄마들에게 또 잠시 헤어져있자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주도에 오고 부터는 저녁을 함께 보냅니다. 저녁 시간에는 늘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합니다. 제주도 이주의 효과는 2주 만에 드러났습니다. 부산에서는 잘 때가 되면 엄마 사랑한다며 안아주다가도, 오후가 되면 늘 부루퉁하던 첫째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학교에 데리러 가면 엄마를 향해 뛰어옵니다. 분명 부산에서는 부루퉁해지던 시간이었거든요. 사소한 대화도 이전보다 더 잘 나누고요. 저도 다른 에너지를 나누어 쓰지 않아도 되니 딸들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관심사를 찾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이전에는 첫째가 다른 친구들이 학원갔다 놀이터로 나올 동안 책을 읽었다면, 제주도 와서는 정말 많은 책을 읽습니다. 이제 책 좀 그만읽자고 해도 재미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다른 자극이 끊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티격태격하지만, 자매의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첫째가 둘째에게 책을 자주 읽어줍니다. 둘째는 몰입해서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모습도 보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유튜브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가고 싶은 곳을 직접 정하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제주도에 있는 100개의 오름을 올라가 보자는 목표도 정했습니다. 첫째는 동물을 좋아하기에 제주도에 가보고 싶은 목장과 동물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매일 이야기 합니다. 핸드폰 보는 시간은 완전히 줄였고, 유튜브도 완전히 끊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안 하냐고요? 전혀요. 만약 심심해하면 함께 보드게임 합니다. 바다에 놀러 나가기도 하고요. 저도 아이들도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이모들은 제주도에 놀러 오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제주도의 많은 곳을 둘러보다가 가장 좋은 곳에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까다로운 저에게 와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아파트에 지냈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답을 찾지 못한 1년 6개월이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답을 찾아냈으니까요. 아이들도, 엄마도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요즘 맹모삼천지교라는 옛말을 느끼며 지내고 있습니다. 환경은 중요합니다. 특히 아이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느낍니다. 도전과 비용이 드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기회비용을 생각해보면 제주살이는 꽤 좋은 도전과 투자였습니다. 제주도에 온 것은 온 가족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주도에서의 이야기도 즐겁게 써내려가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