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해져서 왔다! 제주도
제목을 [단순해야 간다, 제주도]로 지은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단순하지 않은 사람이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제주도에 올 수 있었거든요. 모르는 곳에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주살이를 생각할 때만 해도, 유튜브에서는 제주살이를 접는다는 영상과 제주살이 단점에 대해 언급한 영상이 많았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했던 생각은 '직접 경험해 보고 느끼자'와 '지금 가지 않으면 평생 '갈걸'만 이야기할 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주도 이사를 하고 나서 제주도에 1년 살기 하러 왔다가 정착하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 모습이 꽤 자유로워 보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IB로 유명한 '표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의 학업을 위해 오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중에서 IB 학교가 되기 전부터 여기 살았는데 아이가 학교에 다니다가 IB로 바뀌신 분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한 달도 채 다니지 않아서 구체적인 것을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첫째도 공부함에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좋고, 친구들이 좋은 것과는 다른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이것이 시골 학교라 그런 건지, IB교육의 효과인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이톡을 통해 전해진 학교의 일상은 꽤 즐거워 보입니다. 생각을 끌어내는 수업들이 많이 보이거든요.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 집중하려고 하면 수업이 끝나" 첫째에게도 비교적 여유롭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교육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이 조금 더 잘 맞고 즐거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배움'은 정말로 즐거운 것이니까요.
둘째는 학습이 빠른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속도로 잘 배우는 친구입니다. 둘째가 다녔던 유치원 2019년생(둘째) 아이들이, 2017년생(첫째) 아이들보다 학습 능력이 빠르더라고요. 사립유치원이다 보니 사교육도 많이 하고요. 같은 아파트 엄마에게 2019년생이 다른 연생보다 빠른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하니, 자신이 방문했던 영어유치원 원장님도 2019년생이 빠르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둘째는 첫째와 비슷한 시기에 한글을 떼고 있습니다. 첫째도 빠른 시기에 한글을 뗀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글을 언제 떼든 7세 이전에 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좋았습니다. 글자를 배우기보다, 유아 시기만큼은 그림을 많이 보고, 상상을 많이 하며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늦게 한글을 뗀 것에 대해 조바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생 아이들이 워낙 빠르니 둘째가 뒤처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둘째는 질문하면 오래 생각하는 편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답을 주는 친구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둘째의 속도를 기다려줄 수는 없습니다. 특히 단체 생활에서 둘째의 속도를 기다려 줄 수 없습니다. 단체생활에서는 단체의 속도에 따라야 한다는 걸 공감하면서도 아이에게 더 맞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이 주는 힘은 큽니다. 둘째 친구들도 어리다 보니, 둘째에게 한글을 가리키며 "너 이거 몰라?"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주 놀다 보면 이런 일이 빈번해지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한 말임에도 속상할 때가 있더라고요. 둘째를 다그치는 상대 아이에게 "그건 OO이도 알고 있어. 이모가 알아"라고 말하지만, 막상 둘째가 바로 대답하지 않으니 믿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놀고 집에 가면 둘째에게 "너의 속도가 중요해!" "잘하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때에 따라 필요한 공부를 보충해 줬지만, 실제로 이 말이 둘째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는 주변의 분위기도 빠르게 알아채는 친구거든요. 둘째는 자신을 꾸미는 것이나, 역할극, 인형극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5살부터 울퉁불퉁하게라도 스스로 머리를 묶고 다녔습니다. 6살 때부터는 제가 옷을 골라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잘하는 아이가 당장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 굳이 뒤처지는 느낌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오히려 제주도에 와서 자신의 속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스로 문제집을 펴서 문제를 풀기도 하고(며칠 되지 않긴 하지만), 스스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도서관에서 책 욕심을 내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부쩍 책을 읽고 싶어 합니다. 부산에서 늘 읽던 그림책이 아닌, 요시타케신스케의 책을 더듬더듬 읽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글밥이 꽤 있는 부분도 있거든요. 자신만의 취향도 찾아가는 느낌입니다. 첫째가 사육사가 되고 싶어 동물에 관심이 매우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더니 "난 뭘 좋아할까?"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런 아이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속도를 느껴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반가운 이유는 엄마도 느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입니다. 자기답게 살아내려면 자신의 속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제주도로 이사 와서 만족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도 원하는 환경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속도'에 초연하려야 '초연'할 수 없는 환경을 줍니. 순간순간 페이스를 잃으면, 타인의 진도에 따라가기 바쁜 삶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묘한 불편함이 싫었습니다.
물론 진도에 빠르게 적응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도시에서 많은 교육 혜택을 받으며 자라는 것이 맞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여유로운 삶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정답이 되는 선택지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아이와 가족에게 맞는 선택지가 가장 좋은 선택지입니다.
이런 이유 저를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주도에 간다고 하니 많은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이슈도 있었고요. 그러나 사람들의 걱정보다, 제가 당면한 걱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곳이 예쁘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이렇게 생각을 적다 보니 단순해서 제주도에 온 것이 아니라, 와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서 단순해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도에 이주한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온 것이겠지요. 그리고 제주살이에 시도해 본 사람들은 각자 다른 깨달음을 얻어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무언가 실천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단순해질 정도로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복잡한 저도, 제주도에 가는 결심만큼은 단순했거든요. 운전이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운전이라도 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운전은 어쩌면 평생 못하는 것일 거야 하는 큰 벽 같은 것이었습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출처가 불분명한 이 명언이 생각납니다.
"벽을 무너뜨리면 다리가 된다."
운전이라는 벽을 무너뜨리며 다리가 생겼습니다. 이 다리를 통해 저에게는 또 다른 길이 열린 것이겠지요. 제 자신 안에 있는 큰 벽을 무너뜨리고 나아가는 현재가 즐겁습니다. 얼마 동안 제주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도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이 순간 가족과 나에게 충실한 하루, 하루를 살아보겠습니다. 그림 같은 구름이 뜨는 제주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