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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Apr 27. 2017

여자의 정치

프랑스식 결혼생활 中

나우리, 나금의 이야기


*나금: 한국에서 프랑스학과를 졸업하고 제약영업을 거쳐 영어교육회사의 영업교육을 담당했어요. 두 번의 결혼으로 전남편과는 아들을, 프랑스 남편과는 딸을 두었고 남프랑스 출신의 쟝과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성의 필수품은 무엇일까요? 립스틱, 핸드백, 구두, 책, 사랑, 가족, 스마트폰 등등. 모두 필요한 것들이지만 나우리, 나금은 여성의 필수품으로 '정치'를 꼽고 싶습니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 온 남편과 어느 때보다 뜨거운 한국의 정치에 관해 늘 진지하게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중 일부를 살짝 공개할게요.




한국에서 사회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남편에게 설명해주려 하지만, 차마 다 전달하지 못한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내 남편이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이 큰 부담이다. 한참 설명하다 보면 스스로 정치적으로 미숙한 나라의 국민임을 증명하고 있는 기분이 들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홍조가 된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한국에서 사는 내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는 한국에서 사는 게 왜 좋아?"

"프랑스는... 머리 아파."

"한국은 프랑스보다 더 살기 힘들잖아. 보수적이고 민주주의도 발달하지 못했어."

"프랑스도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어. 생각하면 힘들어. 적어도 여기서는 내가 다 못 알아듣잖아."

"그렇지. 모르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구나. 하지만, 이 나라는 너무 슬퍼."

"음... 어느 나라나 정치 사회 문제는 머리 아프지. 내 친구들도 결국 양치기가 되고 농부가 되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남편의 고향 친구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거나 예술가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한 친구는 알프스에서 양치기를 하고, 한 친구는 고향에서 농부로 사는 삶을 택했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들은 결국에 자연을 일구는 을 직업이자 삶의 방식으로 선택했다. 한 친구는 스쾃*에서 공동체적인 삶을 살면서 음악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에게는 집이 필요 없다. 쓰다 버린 공장에서 새로운 예술의 싹을 틔우는 일이 그의 삶이다. 양치기, 농부, 예술가.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로 오염되어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구를 위한 길이라는 고민 끝에 한 선택들이었다. 그렇게 각자 저항하는 방식이 다를 뿐 목적은 같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까?


*스쾃: Squat. 불법 점거를 일컫는 말로,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작가들이 철거 직전의 건물 등을 작업실이나 공연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1835년 오스트리아의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서 양을 먹이던 행위에서 유래되어, 훗날 주택 점거운동, 주거권 운동 등 투쟁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가 80년대에 들어서 빈 공간을 강제 점거 후 예술공간으로 바꿔버리는 ‘예술운동’ 의한 경향으로 탈바꿈되었다. 모든 스쾃은 공동체주의, 정치적 성격, 예술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나 역시 우리 땅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슬픔보다는 웃음이 가득하기를 희망한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나아질 줄 알았던 세상은 뒷걸음치고 있는 듯하다. 정직하게 열심히 살라고 이야기할 근거가 없는 혼돈의 세상.


결국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철학자의 말이 다시 회자되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의 안위를 버리고 삶을 바쳐 세상의 진실을 쫓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쟝은 늘 이런 나를 지지하고 등을 떠밀곤 한다.


"가서 싸우고 와! 민주주의는 피 흘려서 얻어지는 거야! 이길 때까지 싸우고 돌아와야 해!!"




"자기야. 광화문 집회에 나가야겠어. 아니면 당신이 집에서 애들을 봐줘. 여자들끼리 나갈게."


쟝은 이번에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혹은 하루 종일 집회에 참석해 집을 비우는 부인에게 잔소리 한마디 없이 아이들을 돌본다.


"이 땅에서 내 목소리를 크게 낼 수는 없어. 하지만 당신은 늘 지지할게. 100만 명이 모였다는 건 엄청난 거야."


그래, 지금 우리 앞에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변화의 기회. 멀지 않은 과거 속  1968년 프랑스혁명도 작은 목소리로 시작했음을 상기하며. 나의 든든한 프랑스 남자와 함께 이 땅의 희망을 찾는 일은 계속된다.


(5월 출간 예정인 <프랑스식 결혼생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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