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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Jun 07. 2017

한 달 남았다

이나의 작별인사

나와 앙뚜안은 한국에 있으면 프랑스에 있는 가족이 그립고 프랑스에 있으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할 테니.-프랑스식 결혼생활(가제) 중에서



어제부터 내리는 비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제 저는 6년간의 한국 생활을 접고, 프랑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떠나는 지금 이 순간 기억에 남는 것은 아름답고 좋은 일들 뿐이네요. 눈가는 젖어 있지만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이 저를 더 성숙하게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는 더 끈끈한 무언가를 만든 것 같아요. 한 달 전에 써서 서랍장에 고이 담아 둔 작별인사를 전할게요



한 달 남았다.



한 달 후면 나는 한국땅을 떠난다.

그동안 즐거웠다. 비록 남편 친구의 부인들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린 우리 두 언니들과 책을 쓰면서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간다는 것은 설레는 일임을 또 한 번 깊이 깨달았다.  


한국생활이 내게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엄마와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한동안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엄마가 그리웠지만 단 한 번도 표현해 본 적 없었던, 그래서 지금도 엄마에게만큼은 감정 표현이 서툰 내게도 값진 시간이었다. 항상 엄마 노릇을 못 해줬다며 책망하는 엄마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린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주 녀석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야 하는 마음이 편할 리 없겠지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엄마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 아니라 날마다 손주를 보고 싶어 할 엄마를 위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떠나는 이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쥐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와 오빠와의 관계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 우리 아이들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이런 시간을 갖게 해 준 남편에게 고맙다. 물론 5년 살아보자고 와서 딱 5년만 살다가 떠나는 치밀함이 조금 냉정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그 치밀함 덕분에 프랑스 생활을 과감히 접고 한국으로 오기도 했으니 원망할 일도 아니다. 나 하나를 위해 기꺼이 타국 땅에서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자청한 내 남편에게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걸 배운다.


만삭으로 국제 이사하고 첫째 출산으로 시작했던 나의 한국 생활. 엄마로 이 땅에 살게 해 준 마고와 레오폴. 자식이라는 존재가 부모에게 많은 것을 내려놓게 만들지만 어쩌면 자식보다 부모가 아이들로부터 얻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얻고, 사랑을 얻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위로가 되고, 건강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하다못해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이유도 결국은 우리의 아이들이니까. 내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그곳이 프랑스였다면 지금처럼 엄마 나라 말로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는 없었겠지. 엄마가 좋아하는 청명한 겨울 하늘의 따뜻한 햇빛을 여기서 살지 않았다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었을까?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도 많은 추억을 만들고, 훗날 아이들의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을 한 장면을 꾸미는 일이겠다. 식구가 늘고 해가 거듭될수록 늘어나는 짐들을 정리하면서 보내도 빠듯한 시간이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이것도 인간관계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저것 다 챙겨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소중한 것들로만 짐을 꾸린다.


내 몸은 한국땅을 떠나지만 나는 나우리로 이 땅에서 살면서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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