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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Jun 16. 2017

인생 씻김굿 한 판

지난 주말, 3주 만에 훈이를 만났다. 


"훈아! 엄마 집에 가니까 좋지?"


"그럼 나 이제 엄마 집에서 사는 거야? 좋아!! 근데 엄마, 나 학교는 어떡하지?"

"응..? 학교?"


엄마 집에 가자는 말을 이제 엄마 집에서 산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훈이는 주말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고 일요일에는 다시 아빠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이에게 지금 훈이는 아빠와 살고, 엄마 집에는 놀러 가는 거라고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훈이는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더니 8살이 되면 엄마랑 살겠다고 한다.


"그럴까? 훈이 8살 되면?"

"응! 내가 더 키가 크면!"


아이는 아직 시간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지금 여섯 살이고 조금 더 있으면 8살이 될 거라는 건 어렴풋이 안다. 언젠가, 더 키가 크면 엄마랑 살고 그때는 아빠 집으로 놀러 갈 거라는 뜻이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운전을 하는데 눈물이 흐른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쓴 선글라스가 눈물을 가리기에도 참 용이하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엄마 나 프랑스에 갈 거야! 프랑스~ 파리~ 노래 배웠어! 맞지?"

"그래그래. 꼭 가자."


나에게 엄마라는 인생은 왜 이리 가슴 아픈 걸까. 즐거운 대화 중에 가슴이 미어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밉다. 그래도 많이 단단해졌는데, 눈물이 나는 순간을 피할 수가 없다. 쟝을 만나고 둘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훈이의 엄마로서의 역할도 행복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같은 배에서 나온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이 책이 마치 세 여자분의 인생 씻김굿 같아요."


볼드 저널과 인터뷰를 하던 날, 최혜진 디렉터님이 말씀하셨다. 정확하게 보셨다. 우리에게 이 책은 일종의 한풀이와도 같았다. 내 삶이 더 나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내야만 했던, 행복한 딸, 아내, 엄마,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한 필수조치 같은 거였다. 


책을 쓰다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어려움이 닥쳐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각오로 위기를 넘겼던 이유는 이렇게 책이 끝나버리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것이 정말 씻김굿이었는지는 뒤늦게 깨달았지만, 나는 절대 행복할 거라 큰소리쳤던 내 인생에 대한 한풀이를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젠 이나의 상처가, 우경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지는 모습을 본다. 아픔을 떠올리면 여전히 눈물나지만 쥐어짜듯이 아프고 우울한 정도를 넘어서서 '원래 그런 거야'하며 흘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여물었다. 그리고 더 큰 행복에 집중할 수 있는 강한 힘이 생겼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면 우리 외할머니도 참 한 많은 인생이었다. 625 전쟁 통에 처자식을 북에 두고 남으로 내려온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자와 만나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그 까닭인지 늙어서는 각종 병환에 시달리다 10년 병상 생활 끝에 저세상으로 가버리셨다. 가끔 할머니를 떠올리면 참 눈물이 난다. 뒤이어 아픈 할머니를 보듬으며 모든 한을 나눠가진 듯이 살았던 우리 엄마. 또 눈물이 난다. 그렇게 한 많은 영혼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을지. 그저 우리의 삶이 한 조각 거울이 되어 몰아치는 아픔을 반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가 대신 씻김굿을 했어요. 그만 아파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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