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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Jul 21. 2017

나의 시월드가 사랑스러운 이유

솔직히 말하면 난 시댁에 가는 길이 늘 설렌다.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시엄마. 그다음이 시아빠. 그리고 시누이마저도 너무 보고 싶다. 세상에, 시댁 식구들이 보고 싶다니!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는데.


일 년에 두 차례 명절마다 전쟁 치르듯 찾아가는 시댁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오랜만에 만나다고 해서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괴롭다.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도착했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끝없는 설거지와 음식하기 라면 내가 대체 왜 이 결혼을 했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던지게 된다.


나의 사랑해마지않는 프랑스 시댁은 프랑스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베롱에 속한 작은 도시 로데즈에 있다. 서울에서 시댁까지 가는 길은 간단치 않다. 보통은 파리에 도착해서 며칠을 보낸 후 로데즈로 가는 국내선 항공을 타고 남쪽으로 1시간 내려간다. 이번 여름에는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바로 로데즈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나마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 보니 여정이 조금 꼬인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파리까지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샤를 드골 공항에서 툴루즈로 가는 항공기로 환승한 뒤, 툴루즈에서 2시간 차를 타고 달려야만 로데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 22시간이 걸린 여정이었다.  


시아빠는 툴루즈 공항에서 우릴 픽업해주셨고,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서자 시엄마가 우릴 반기셨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얼굴이라 더 반갑다는 감정은 시엄마를 볼 때마다 느낀다. 시엄마는 늘 따뜻하고 다정한 분이시다. 집안을 환하게 만들고 가족들을 뭉치게 하는 힘을 가지셨다. 게다가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한 똑똑한 재원인데, 착한 시골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고 시골에 머물러 사는 순수한 마음까지 가지셨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시엄마가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늘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


'아, 집이다. 집에 왔다.'


1년에 한 번 오는 나도 이젠 정말 내 집에 온 기분이다. 그러니 남편은 그 기분이 오죽할까?

쟝은 18세 이후로 시골 도시를 떠나 혼자 타지에서 살아왔고, 고향집은 휴가철마다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이젠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고향을 찾는다. 타지에 살면서 매년 집을 찾아 돌아오는 그이의 기분을 조금씩, 예전보다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단숨에 남프랑스까지 날아가자 우린 녹초가 되었고, 침대에서 기절한 듯 누워 첫날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곳은 여전히 그림처럼 예쁘다. 한여름에도 선선하고 건조한 바람, 따뜻한 햇살, 그리고 맑은 공기.


아침 식사 후 우린 여유로운 산책길에 나섰다. 손주들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시부모님은 작은 말 두 마리를 집 앞 들판에 풀어두셨다. 아이들은 저마다 "내 말이야!"를 외치며 말을 타고, 말과 함께 뛰어논다. 옆집 마당에는 당나귀와 덩치 큰 수탉도 산다. 심심하다 싶으면 달려가 인사를 나누는 동물 친구들이다.

작은 개천 위에 놓인 서정적인 돌다리. 집에서 이 다리까지가 아이들과 주로 오는 산책길이다. 이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마침 옆집 시누이의 친구가 집을 사서 이사 왔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담벼락 위로 집안을 기웃거려본다. 마당은 조금 작지만 성같이 크고 예쁜 집이다. 마당이 작으면 어떤가, 길 건너 들판은 다 이 집 소유다. 그래서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실제로 매입가는 3억이란다. 3억으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니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등바등 사는 이유를 빨리 찾아야만 이 설명할 수 없는 마음속 혼란이 사라질 것 같다. 마침 우리 집은 매매를 위해 내놓은 상태다. 그리고 그다음은 어쩐다.. 를 고민하고 있는 찰나, 멋진 고성 같은 집을 보다니.


남편과 나는 당분간 서울을 떠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시댁을 올 때마다 그 가능성이 조금씩 더 커진다는 것을 느낀다. 아름다운 자연과 동화 같은 집에서 사는 삶은 여유가 넘치고 아이들의 일상은 활력과 즐거움에 넘친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삶을 산다는 게 아직 겁이 난다. 막상 이 곳에 살면 또 다른 어려움이 존재할 테고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당장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주어지는 여유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에서의 치열한 삶이 버거우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니 그런 내 삶이 끔찍하기도 하고 그렇게 훈련된 내가 서글프기도 하다.


사실 나의 시월드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은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남과 나를 비교하기 바쁜 문화가 이곳에는 없다. 화장도 덜하고 고물같이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다. 한국의 가족들마저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의 과거마저도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족과의 행복에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주변에서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고 늘 가족은 중심에 있다. 당연한 것이 실현되는 삶, 그 자연스러움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고 그 때문인지 난 이곳을 더 사랑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나의 시월드, 나의 가족. 내 인생에 행운 같은 존재. 이 편안함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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