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에 지은, 유럽의 성같은 집에서
남편 쟝을 만나고 나의 휴가는 180도로 달라졌다. 길어야 일주일 정도 보내던 휴가가 적어도 한 달로 길어졌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이 부기 기수로 늘었다. 이렇게 열심히 놀아본 일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놀고 휴식하고 먹는다. 이제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쉬어주어야 인생이 살맛 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쟝을 만나기 전의 바쁜 인생을 어떻게 살았던 거지? 예전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프랑스인들은 긴 여행을 떠나고 휴가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직접 겪어보니 과장 조금 보태면 여행과 휴가를 위해 평생을 일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남편 쟝 역시 휴가가 없으면 숨도 못 쉴 사람이다. 그는 여름에는 한 달 동안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 가족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주변 나라나 휴양지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고, 가을이나 겨울에는 일주일 정도 아시아의 가까운 짧은 여행을 다녀와야 적절히 일하고 휴식하며 잘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물론 쟝의 인생 패턴을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일을 그만두거나 혹은 쟝과 같은 직업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다행히 난 지금 육아휴직 중이고 고민할 필요 없이 지난겨울과 올여름을 프랑스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쟝의 여름휴가는 시끌벅적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매년 여름마다 친구들을 고향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여는데, 프랑스 전역과 유럽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쟝의 친구들은 그들의 가족과 함께 아베롱(Aveyron)으로 모여든다. 쟝은 아베롱에서 모인다는 뜻으로 이 모임의 이름을 Aveyronnade이라고 붙였다. 아이들을 포함하면 40명에 가까운 친구들이 쟝의 부모님 댁과 여동생 집에서 잠을 자고, 캠핑을 하고, 마당에서 바비큐를 하면서 먹고 마시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쟝과 결혼하기 전에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파티를 올해 드디어 참석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실감할 수가 없는데 프랑스인들의 여름 휴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남편은 연초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7월 마지막 주말로 날짜를 확정한 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파티를 공지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장소를 색다른 곳으로 하기로 했다. 쟝이 마흔 살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특별한 파티를 하고 싶었고, 더불어 프랑스에서 못다 한 우리의 결혼식과 애나의 돌잔치도 함께 하기로 했다. 아, 그리고 나우리 가족도 이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나는 파리에서 차로 8시간을 달려 내려오고, 우경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리옹에 도착해 5시간을 운전해오는 일정. 생각만 해도 피곤하지만 그래도 함께 한다는 생각에 들떴다.
파티 준비에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우선 장소 섭외. 부모님 댁에서 멀지 않은 산 위에 멋진 집을 5일 동안 빌리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동료가 별장처럼 쓰는 집인데, 100여 명이 파티를 할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먹을거리!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 브루노가 야채과 고기, 소시지들을 모두 준비해주었다. 마실거리 중에 가장 중요한 와인은 몇 년 전부터 쟝이 마흔 살 생일을 위해 조금씩 구매해 둔 터라 이미 몇 박스 쌓여있었고, 생맥주를 추가로 구매했으며 친구들 역시 샴페인과 와인을 들고 올 것이다.
드디어 파티가 열리는 주말이 왔다. 1시간가량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서 산 위로 올라갔다.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예상보다 멋진 장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세월이 묻어나는 건물,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밝혀주는 파란 하늘.
넓다는 것 외에 장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였기에 우린 더 놀랐다. 단순히 파티하는 공간 이상으로 매력적인 장소였다. 파티 장소는 12세기~ 13세기에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이 지역에서 수확된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와 침입자로부터 곡식을 지키기 위해 건설된 요새였다. 천년 전에 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공간인데 이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게다가 남편의 마흔 살 생일잔치를 한다니 상상만해도 멋진데 실제로 눈 앞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잠을 자는 공간 역시 만족스러웠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정원에서 아침 식사를 할 생각에 절로 탄성이 나왔고, 방마다 개성 있는 인테리어와 고풍스러움에 신이 났다. 이런 공간에 머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스트레스는 날아가고 없었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
부엌은 얼마나 넓은지! 이렇게 큰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방 전체가 조리도구들과 식기류로 가득했고, 벽난로까지 있었다. 이 곳에서 요리를 하고 만찬을 즐긴다고 상상하니 마치 왕좌의 게임의 한 장면을 찍는 기분이었다.
장소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엑상프로방스, 마르세유,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온 친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비쥬(bisous)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처음 만나는 친구와 가족들이 너무 많아 한번에 이름을 외우기가 힘들었다. 그들에게도 한국에서 온 우리의 이름을 익힌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인가 보다. 서양인에게 한국 사람의 이름은 대체로 비슷하게 들린다. 애나, 유라, 이나, 우경... 두 글자 안에 비슷한 발음들이 많으니 얼마나 헷갈릴까? 게다가 프랑스에서 사용하지 않는 발음도 있다. 덕분에 한 친구는 지은의 이름을 헤어지는 순간까지 존이라고 불렀다.
4박 5일이라는 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매일 밤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고, 바비큐를 굽고, 아이들은 쉬지 않고 뛰어놀기에 바빴다. 토요일 밤이 하이라이트였는데,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자리에 앉아 축배를 들었다. 비록 생각보다 추운 날씨 덕분에 준비해 간 드레스는 입지 못했지만, 쟝의 마흔 살 생일 축하하고, 애나의 생일을 축하하고, 마지막으로 내년에 태어날 또 다른 아이의 탄생을 친구들에게 알리며 축하받은 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었던 밤이었다.
쟝의 여름 파티는 매년 계속될 예정이다. 일 년에 한 번 한 자리에 모이는 친구들은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길게는 30년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과의 우정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멀리 떨어져 살지만, 마음은 늘 가까운 친구들. 백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 여행을 다니고 휴가를 즐길 친구들이었다.
남편은 5일간의 파티 내내 숨가쁘게 바빴다. 여기저기에서 불러대고 숙소와 음식, 관광지에 대한 안내 등 대소사를 챙기느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리만큼 바쁘게 뛰어다녔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로에 찌들어 잠이 들고 다크써클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잠에서 깨는 남편을 보면서 이렇게 죽을만큼 피곤하게 파티를 하는 의미가 있을까 의아한 순간도 있었고, 프랑스들인의 휴가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특히 이 남자의 휴가는 거창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기쁨이 가득했고,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주말 휴가가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에게 가장 큰 생일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함께 한 모든이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중년의 남자. 그래서 그런가, 마흔에 접어든 내 남편이 더 멋지고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수많은 프랑스인들과 함께 한 파티는 끝이 났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를 나누며 각자 갈길을 떠났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남은 휴가를 지속하기 위해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이제 각자가 계획한 일정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휴가를 즐길 차례였다. 우린 집으로 돌아와 휴식하면서 집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즐거웠던 파티를 회상했다.
"내년에도 여기서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번에 못 온 친구들도 더 올거야."
아니,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이 더 있다고? 챙길게 더 많겠네. 내년에는 체력을 더 단련해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