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7. (2)
1. 눈물의(?) 쌍화탕을 들고 집에 들어가니 아빠가 아직은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고 있다. 엄마가 딸이 왔다고 설명을 해준다. 겨우 하루 밤이 지났을 뿐인데, 아빠는 또 살이 빠져있었다. 광대아래로 움푹 파인 홈이 하나 더 늘었다. 어제는 담즙을 토해내느라 못 자고, 오늘은 퇴원소동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으니 이제라도 못 잔 잠을 몰아 자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떠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명천재 카페 사장님 얘기를 해주고 싶은데 정신을 못 차려서 잠시 참아둔다. 아빠의 숨에는 안숨과 고통이 섞여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빠의 손을 잡아주고 주물러주는 것뿐이다. 차가워서 더 가죽 같은 느낌을 주는 손을 주물러준다. 이따금 아빠가 답하듯 내 손을 다시 꼭 잡아주지만 아주 잠깐일 뿐이다.
2. 아픈 아빠를 두고 엄마와 빵에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다.
엄마는 '너 없었으면 밥 안 먹었을 텐데'한다. 사실 아픈 아빠에겐 내가 해줄 것이 손잡는 것뿐이고, 엄마 식사 걱정도 내가 내려온 이유 중 하나였다. 아빠가 선잠에 든 사이사이 우리는 약간의 대화를 한다.
3. 잠시 잠에서 깨어난 아빠가 옷을 걷은 배를 보여준다. 배는 잔뜩 팽팽해져 있다. 임신한 것처럼'부푼'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앞으로, 좌우로 팽창하고 배꼽도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손을 대보니 살이 아니라 뼈처럼 단단하다. 암덩어리들이 아빠의 몸을 잔뜩 차지하고 있었다.
아빠가 갑자기 이불을 치우라고 한다. 열이 오르는 걸까, 이불을 치우자 뭔가 역한 냄새가 방을 채운다. 내가 피해 줘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아서 양치를 하겠다고 일어났다. 씻고 나와서 보니 그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빠가 악취를 풍긴다.
이내 다시 잠든 아빠를 옆에 두고 나는 '임종 전 증상'에 대해서 검색해 본다. 우리에게 시간이 더 있을까, 나는 다시 학교에 다녀와도 될까, 내가 없는 사이에 엄마와 둘이 있을 때 아빠가 떠나면 안 되는데, 차라리 이렇게 숨쉬기 어려운 고통에 갇혀있지 말고 내가 이렇게 옆에 있을 때, 손잡고 있을 때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언니나 동생생각은 안 하는 둘째 딸의 욕심이 있었다.
4. 그래도 아빠가 점점 더 정신이 온전해진다. 병원의 좁은 침대 안에 갇혀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소음에 시달리던 것보다 표정도 숨 쉬는 것도 편안해 보인다. 간호사도 의사도 불신하던 불안한 마음도 훨씬 안정된 것 같다. 무엇보다 화장실을 스스로 간다. 엄마의 부축도 없이, 거의 기어가는 모습이지만 그래서 전에도 무릎에 멍이 들었다고 하지만 스스로 화장실에 간다.
섬망증세로 동생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던 아빠의 불안정한 모습은 신기할 정도로 모두 사라졌다. 병원에 있던 죽어가는 '환자 8'이 아니라 존엄한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말을 하기 어려운 아빠가 오른손을 들어 연필로 쓰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준다. 나는 작은 노트와 연필을 내민다. 아빠는 '이거 소주 10병 먹고 버미트(아빠는 이렇게 썼다._구토)할 때...'라고 그 상태가 계속되는 거라고 한다. 그런 상태를 내가 알아서 더 슬펐다. 괜찮은 상태가 이 정도라니.
바로 누워있던 아빠가 이불왼쪽을 살짝 걷어 내린다. 그리고 왼손으로 아빠 옆을 툭툭 친다. 옆으로 와서 쉬라는 뜻이다. 나는 어린 딸이 되어 옆에 가서 눕는다. 아빠의 앙상한 팔을 붙든다. 쓰다듬는다, 오래전에 생겼던 상처들을 매만져본다. 잠들지 못하는 딸은 계속해서 아빠를 어루만진다.
'아빠 내가 여기 있어, 내가 계속 여기 있어'라는 말 대신이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 등에 내 등을 대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던 것처럼 자신의 몸 안에서 힘든 싸움을 하는 아빠를 응원한다.
5. 아빠가 '우유'를 찾는다. 엄마가 바로 편의점에 가서 사 오겠다고 하자 붕어싸만코도 먹고 싶다고 한다. 엄마는 왜 그런 음식을 먹냐고 되묻지 않는다. 이제 그런 질문은 의미 없다. 먹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만도 다행이다. 엄마는 서둘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내가 있어서 그래도 편한 맘으로 다녀온다며 길을 나선다. 외진 동네라 편의점도 멀리 다녀와야 한다. 아쉽게도 붕어싸만코는 없었다. 대신 빵또아가 왔다.
아빠는 냉동피자도 찾는다. 아픈 와중에 손가락을 사용하며 4300원밖에 안 하는 피자라고 강조한다. 그 위에 올리브유를 뿌려서 1분 30초 전자레인지에 돌려오라고 이렇게 디테일하게 요구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기운이 좀 난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원하는 자세로 앉을 수 없어 아빠는 베개를 무릎과 가슴 사이에 끼우고, 무릎을 꿇고 숙이는 자세를 취하고 나서야 뭔가를 먹을 수 있었다. 아빠는 소주잔에 데운 우유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데워온 피자를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작게 잘라서 우유에 찍어서 두 조각 정도 먹는다. 아이스크림(사만코 대신 온 빵또아)도 세입정도 먹는다.
6. 아빠가 한 시간에도 몇 번을 이불을 엎으라고 했다가 치우라고 했다가를 반복한다. 이번엔 동생 여자친구가 사줬다는 핸드크림을 찾는다. 거기에 물을 섞으라고 한다. (아빠는 옛날부터 아까워서 샴푸에도 치약에도 물을 섞었다. 죽을 때가 되지 않은 것인지, 원래 사람은 변하기 힘든 것인지 우리 아빠 참 그대로다.) 손에 좀 바르는가 싶더니 팔에도 바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내가 발라줬다. 발과 다리에도 발라줬다. 다리도 팔처럼 앙상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몸집 좋았던 흔적은 가죽이 되어 닭 벼슬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발가락을 바르는 대목에선 아빠의 무좀 걸린 발가락이 잠시 눈에 들어왔지만, 발가락 사이 하나하나 손가락을 넣어서 핸드크림을 발라줬다. 엄마는 연신 '딸이 와서 호강하네'한다.
몇 번을 더 주무르고 두드려주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나는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또 임종 직전 증상에 대해 찾아보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엄마는 이보다 더 피곤한 하루를 매일매일 보내고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