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Oct 19. 2023

왜 아빠 앞에서는 안 나던 눈물이

2023.03.27. 월.(1)

1. 아빠의 상태와 관계없이 나의 하루는 평화로웠다.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점심을 먹고 수다시간. 서로의 주말을 이야기를 나눈다. 평일에 못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멀리 사는 친구들을 만났다는 즐거운 주말이야기에 아빠의 병원 탈출 스토리를 보태고 싶지 않아 말을 삼킨다. 

  이어진 내일의 회식 이야기. 나는 평소에도 최대한 회식을 빠지고자 하는 인간임을 이미 잘 아는 부장님에게 내일 못 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부장님과 나는 사실 막역한(?) 술친구나 다름이 없는데, 내가 또 빠진다고 하니 장난으로 성을 내신다. 

‘아 왜 또~, 같이 가자~‘ 

  나는 

’ 내일은 지금 술이 문제가 아니라 아빠 때문에 전주에 가야 할 수도‘

  라는 문장을 다 끝내기도 전에 눈물이 흐른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왜 눈물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겨우 그 한 문장 사이에 내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고 옆에 있던 두 사람 눈시울도 붉다.

  “그렇게 안 좋으셔? 지금은 어디에 계셔?‘

  나는 답을 짧게 넘긴다. 

  “많이 안 좋으신데, 지금은 집으로 갔어요. 그나저나 부장님 내일 회식 힘들겠네,‘

  나는 평소처럼 대화를 전환한다. ‘그니까 너라도 같이 있어야는데,’ 선생님들도 얼른 맞춰준다.

우리는 눈씨울이 잔뜩 붉은 채로 다른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2. 병원이 아닌 집에 아빠와 단둘이 있어야 할 엄마가 걱정이었다. 아빠 상태가 이보다 더 나빠진다면, 그래서 엄마와 둘 밖에 어미는 상태에서 아빠의 숨이 멎는다면, 엄마는 얼마나 무서울까.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될까 봐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무서울까. '내가 갈까?' 하자 엄마는 됐다고 한다. '나 내일 수업 없어서 자고 올 수 있어~!' 하자 엄마가 '그럼 올래?' 한다. 내려오라고 잘하지 않는 엄마가 오라고 하면 가야 한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왜 진작 내려갈 생각을 안 했을까. 물론 겨우 어제 전주에 있다가 내려왔으니까. 오늘 바로 전주에 갈 마음이 생길 줄은 나도 몰랐다. 차라리 미리 준비해서 일찌감치 조퇴하고 내려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긴 아빠가 이렇게 갑자기 퇴원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아빠의 상태에 대해서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나 스스로도 '자책'하지 말자.



3. 퇴근을 하고 잠시 집에 들러 먹을 것들을 챙겼다. 괜히 엄마가 내 찬거리 걱정할까 싶어 집에 있던 찬거리와, 엄마 막을 빵을 구입해서 전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여기저기 꽃이 피어있거나,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다. '아빠는 이런 좋은 날 떠나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운전하는 내내, 내가 여기서 작은 사고라도 나면 엄마가 진짜 힘들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절대 엄마에게 다른 불행을 얹어 주지 말자.


4. 집에 도착했는데 어제 봤다고, 여리가 나를 보고 짖지도 않는다.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창문 너머 엄마 아빠를 보는데 곤히 잠들어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빠가 겨우 잠든 것 같고, 엄마도 이 기회에 자두지 않으면 피로를 이길 길이 없을 것이다. 나는 현관문 열기를 관두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차를 한잔 시키고 이렇게 글을 쓰려고 했다. 노트북을 꺼내려는데 엄마 문자가 왔다. '어서 와~' 나는 바로 다시 일어나서 사장님에게 테이크아웃으로 달라고 말씀드렸다. 사장님이 어리둥절해하셔서 내가 옆집 딸이라고 말씀드렸다. 아빠가 주무시는 줄 알고 왔는데, 일어나신 것 같아서 빨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사장님은 '아빠를 많이 닮으셨네'하시더니 아빠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 통 산책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고. 

  나는 '아빠가 2주 전보다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라고 대답을 하는데,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또 눈물이 쏟아진다. 사장님은 덤덤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내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신다. 아빠 가져다 드릴 쌍화탕을 준비해 주신다고. 그렇게 기다리는 내게 사장님이 몇 번이나 '혼자 왔어요?'라고 묻는다. 아빠가 사장님에게 늘 자랑하던 신랑은 같이 안 왔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주말에 같이 왔다가 평일이라 혼자 왔다고 답했다. 전에 왔을 때는 인사를 드리는 정도였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는데, 오늘 사장님은 차를 준비하면서 계속 이런저런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 동네에 왔을 때 대부분 노인분들이셔서 '교수님'이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교수님'마당에서 일하고 있으면 제가 가서 말 시키고 귀찮게 했어요. 우리 카페 간판이랑 파쇄석이랑 다 '교수님'이 손을 보태줬어요." 평소 말이 많지도, 길지도 않은 분인 것 같았는데 오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혼자 길게 해 주신다. 아빠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이 반갑고 고맙다. 테이크아웃잔에 담긴 음료는 3개였다. 아마도 그래서 그렇게 '혼자'왔냐고 물으셨다보다. 내가 시켰던 우롱차, 아빠 줄 쌍화탕에, 말도 없이 엄마 아메리카노까지 내려주시고 엄마 좋아하는 소라빵(크라상)도 네 개나 담아주신다. 주시면서 "내가 가보고 싶은데 가면 괜히 폐 끼칠까 봐"


사장님은 어쩌면 아빠를 더 잘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작아지고 작아진 스스로의 모습을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싶어 하니까.




이전 07화 아빠의 마지막 드라이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