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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Oct 16. 2023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미래

2023.03.25. 토.

1. 병문안은 그렇게 슬펐는데, 엄마랑 울면서 헤어져놓고, 우리는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 시간 아빠는 몸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토해냈다고 한다. 그 시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자고 거리를 떠돌았다.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즐거운 밤이었다. 아빠의 고통과 별개로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무심한 일이다. 나는 내 즐거움에 대한 핑곗거리로 아빠의 폭력을 앞에 뒀다. 아빠한테는 이 정도 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질문이 이미 스스로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답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루 더 전주에 있기로 하고 신랑만 천안으로 보냈다. 아빠는 신랑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래서 신랑 앞에선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써야 하는 피로감이 있으니까. 그래서 어제 우리도 그렇게 빨리 보낸 것일 테니 나는 신랑만 보내고 다시 병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2. 오늘은 동생이 왔다. 동생과 함께 아빠 병실을 찾았다. 아빠는 동생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어제와 같은 미소도 없었다. 보호자용 낮은 침상 위에 엄마랑 나랑 동생이 셋이 나란히 앉아서 아빠를 살핀다. 아빠가 다시 잠이 든다. 나는 그 사이 동생에게 아빠 옆에 있으라고 하고 엄마와 병실을 나간다. 


  지금 아빠 옆에는 누가 항상 있어야 한다. 엄마는 그래서 줄곧 옆에 있던 사람이다. 동생 덕분에 엄마는 잠시 병실을 벗어난다. 어제 내가 사 왔던 빵을 몇 개 챙기고 믹스 커피를 한 잔씩 타서 같은 층에 있는 꽤 넓은 테라스로 나간다. '엄마 밥은?' '아빠가 밥을 다 못 먹으니까, 그거 남긴 거 먹기도 하고, 이렇게 사다 놓은 거 먹기도 하고 괜찮아'. 나는 아빠와 떨어지면 멀어지기가 무섭게 나의 삶으로 복귀하는데, 엄마의 삶은 지금 몇 년째 아빠의 암과 함께다. 큰고모 셋째 고모가 그래도 와서 들여다봐준다는 이야기, 귀순이 아줌마가 와서 아빠 자세 고쳐주느라 고생한 이야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는 얼른 들어가자고 한다. 나는 '필요하면 민성이가 전화하겠지, 언제 또 이렇게 나와있을 수 있다고, '하고 말하지만 엄마는 들어가자고 한다. 


  마침 아빠가 의식을 찾은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동생을 보더니, '머리 잘랐어?' 한다. 아까도 동생을 봤지만, 아빠는 이제야 동생을 제대로 본 것이다. 입이 마르고 계속된 구토로 목이 아픈 아빠는 말을 몇 마디 더 하지 못하고 연필을 달라는 손짓을 한다. 내가 얼른 태블릿을 빼서 내민다. 처음 써보는 태블릿인데도 아빠는 내가 지우는 것을 한 번 보여주니 아주 능숙하게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한다. 

  

  '급할 때일수록, 더 천천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렇게 쓰더니 우리가 읽고 나자 이내 또 능숙하게 지우고 나에게 아이패드를 돌려주신다. 하지만 나는 이 글씨가, 이문장이 아빠가 마지막으로 쓰는 글씨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아빠 몰래 얼른 되돌리기 버튼을 눌러 글씨를 살려둔다. 

  

 나는 이제야 아빠의 뭔가를 붙들어 두고 싶은가 보다.       


3. 점심시간에 나는 엄마를 모시고 바로 옆에 있는 한식집에 갈 생각이었다. 어제 신랑과 먹었는데, 집밥처럼 정갈하게 잘 나와서 제대로 못 챙겨 먹는 엄마랑 꼭 와야지 했는데, 역시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엄마는 또 아빠가 남긴 밥을 먹으면 되고, 엄마가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을 수 없으니 우리더러 가서 잘 챙겨 먹고 오라고 한다. 엄마말 잘 듣는 자식 둘은 그렇게 병실을 나선다. 평일에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는 직장인 둘이 굳이 오늘도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는 병원 아래 편의점으로 가서 컵라면과 샌드위치를 샀다. 동생이 사줬다. 이 와중에도 라면이란 입맛을 돋우는 대단한 완전식품이다. 둘이 앉아서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아빠의 건강이나, 우리의 미래보다는 그냥 동생 연애하는 이야기를 했다. 

  속내를 잘 말하지 않는 누나와, 속내가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한 동생의 식사였다. 


4. 집에 돌아가서는 밤새 동생과 유튜브를 봤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했다. 이 집에서 이렇게 자유롭고 편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저녁때도 우리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치킨을 먹고 맥주를 한 잔 하고 지칠 때까지 핸드폰을 보다가 서로 ‘양치는 해야지’라며 서로를 독려하며 겨우 양치를 하고 또 핸드폰을 하다가 잠들었다.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다.                                                                                                                                                                                                               

5. 아빠는 당장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나는 내년을 기대하고 있었다. 내년을 계획할 수 있다는 거, 미래를 꿈꾸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것,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된 미래는 뭔가 더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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