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4. 화
1. 나는 어쩌면 조울증인지도 모르겠다. 우울하고 가라앉았다가도 신랑을 보면 행복해진다. 아빠에 대해서도 잊게 된다. 조증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빠가 그렇게 아픈데도 신랑 앞에서는 까부는 나를 발견한다. 신랑과 함께라면 조울증이 아니라 그저 '밝은'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안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씻고 퇴근한 신랑과 야식을 먹으며 피부관리를 하고, 같이 누워서 이렇게 현재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행복이다.
2. 행복사이에 켜켜이 좁쌀 같은 죄책감이 박힌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아빠는 그것을 바랄리 없다. 내 시간에는 내 인생을 살기를 바라겠지.
3. 사과를 먹으며 출근을 했다. 사과를 먹는 행위는 뭔가 내 몸을 잘해주는 느낌이다. 기분이 좋다.
4. 어제 중환자실에 끌려들어 간 아빠가 오늘은 일반병실로 옮긴다는 연락을 받았다. 투석을 했다고 한다. 원래도 몸이 안 좋으니 두 시간만 투석을 하자고 했지만,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한 시간밖에 안 했다고, 오늘 투석을 한 번 더 진행한 후에 일반병실로 옮긴다고 한다. 오늘 신랑과 나는 캠핑을 가려고 했었다. 따듯해진 날씨 캠핑하기 좋은 날씨라 고대하던 날이었다.
병문안 때문에 캠핑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캠핑은 전주로 가기로 했다. 아빠부터 만나고, 엄마 맛있는 것을 사주고 와야겠다.
5. 퇴근을 해서 집으로 달려간다. 늘 함께 가주는 신랑이 고맙다. 표현하지 않으면 이 고마움도 알턱이 없으니, 나는 용기 내서 '고마워'하고 말한다. 신랑은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한다. '가주는'것이 아니라 당연히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짝꿍이다.
6. 병원에 도착해서 아빠를 만났다. 2주 전에 만났을 때도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는데, 살이 더 많이 빠져있었다. 특히 얼굴의 변화가 심했는데 뼈가 있는 부분 빼고 살이 있어야 할 모든 자리들이 움푹 파여있었다. 눈과 귀 사이, 안구를 둘러싼 뼈 옆부분이 그렇게나 깊이 패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아빠 손을 잡아주고, 변한 아빠의 몸을 관찰했다. 촉감도 달라졌다. 오랫동안 연장을 잡아 단단했던 손은 이제 없다.
아빠는 이제 카센터가 아닌, 포클레인 위가 아닌, 병원에 있다. 심지어 의식이 없어서 대화도 할 수 없다. 나는 아빠의 손을 들여다봤다. 아빠의 손을 잡아본다. 보통 아빠는 내 손을 잘 잡고 있다가도 힘자랑하듯 아플 정도로 세 개 쥐곤 했는데, 약을 먹고 잠들어있는 아빠가 잡아주지 않으니 내가 아빠의 손을 꼭 쥐어본다.
아빠의 손은 아빠를 상징하는 것과 같았다. 아빠가 주먹을 쥐면 그 손이 정말 크고 단단했다. 늘 밖에서 일하고, 기름을 묻히고 다치니 손은 늘 상처투성이의 어두운 색이었다. 나는 자주 내 작은 손을 쥐고 아빠의 주먹 옆에 가져다 대곤 했다. 그럼 아빠는 주먹에 더 힘을 쥐었고, 손가락의 근육이라도 되는지, 더 울퉁불퉁 단단해지는 아빠의 주먹을 손가락으로 눌러보기도 하고, 내 주먹으로 쳐보기도 하곤 했다.
카센터를 운영하던 시절 아빠는 손을 철 수세미와 주방용 세재로 씻었다. 나는 그 장면을 자주 봤다. 한두 번쯤은 지나가다가 '아빠 왜 그런 걸로 씻어, 안 아파?'라고 했던 것 같다. 그마저도 나중에는 염려가 아니라 핀잔이 되었다. '그런 걸로 좀 씻지 마' 글을 쓰다 보니 병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순간들 속에 아빠를 더 아끼고 안쓰럽게 여기지 안 않는지 생각해 본다. 어쩌면 아빠의 그런 희생을 모두 '아빠의 선택'이라는 명목아래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조금 더 고마워하고, 조금 더 안쓰럽게 여겼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다. 지금의 후회는 의미가 없다. 더더욱 아빠가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지금 잡아줄 수 있는 아빠의 손을 더 많이 잡아주고, 주물러주고 쓰다듬어준다. 고생을 많이 했던 그 크고 단단하던 손이 내 기억 속 어느 때보다 깨끗하다. 아빠는 아프고 나서야 일을 줄였으니, 아프고 나서야 손도 하얘졌다. 아빠는 자주 입고 있던 메리야스를 걷어올려 뱃살을 다 보여주며 "내가 원래 이렇게 하얀 사람인데, 이렇게 탔어" 하고 장난 섞인 푸념을 하곤 했다. 아프고 나서야 아빠의 손은 아빠의 속살과 비슷한 밝은 빛을 내비쳤다.
놀라운 것은 손의 색뿐이 아니었다. 손근육마저 키운 것 같던 단단한 손, 상처투성이의 거친 피부결도 얇고 보들보들해졌다. 어릴 때부터, 나이 먹어서까지 자주 아빠의 손을 붙들기도 하고, 내 손과 비교하기도 했던 나는 아빠의 손이 이런 감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빠가 아프다는 슬픔도 잊고 나는 잠시 아빠의 손을 관찰했던 것 같다. 특히 아빠의 엄지 손가락은 단단한 것을 들 쥐어서인지 아주 단단했는데, 그 엄지손가락이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원래 커다락 크기였으니 손가락이 이리 밀려서 눌리고 저리 밀려서 눌리고, 그대로 모양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속없이 아빠 손이나 궁금해하고 있는데, 아빠가 깨어났다. 왔냐고 눈으로 인사해 주고는, 전에 그랬듯이 아빠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을 꼭 쥐어줬다. 아플 만큼은 아니었지만, 안심이 되는 힘이었다.
7. 아빠가 정신이 들었을 때, 신랑도 와서 인사를 한다. 아빠는 또 웃는다. 그러다가 아빠는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우리를 일어나서 맞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지금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다. 아빠는 반쯤은 꿈결처럼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계속 일으키라고 할 뿐이었다. 엄마가 힘겹게 아빠를 일으켜보지만, 그제야 아빠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눕는다.
집처럼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침상 위에 있는 아빠의 자세를 바꿔주는 일은 더 힘든 일이었다. 엄마는 혼자 그렇게 아빠를 조금 일으켰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세 바꾸는 일도 어려우니 화장실을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좁은 침대 위, 모포 엄마 아빠의 전쟁터였다.
엄마는 더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우리에게 나가있으라고 한다. 아빠가 정돈을 하는 동안 우리는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가있는다. 티브이가 있는 병실 앞 로비소파에 잠지 않는다. 오래되고 낡은 파란 의자의 쿠션이 뜯어져 있다. 그 부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8. 간호사가 링거액을 바꾸고 가자 나에게 링거액을 사진으로 찍으라고 하고, 그 사진을 요양보호사로 있는 엄마의 친구에게 보내서 확인하라고 한다. 나에겐 연신 집에 가라고 한다. 평소에 늘 그랬던 것처럼 '네 할일'하라는 의미 였는지, 사위까지 달고 온 딸이 옆에 있으니 편한 모습으로 쉴 수 없어서인지 그 때는 알지 못했으나, 퇴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보니 아빠는 그 때 내 가방에 아빠가 복용해야하는 약을 넣어줬다. 그 약이 당신을 죽이는 약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빠는 병원에 입장에선 어차피 죽을 사람은 빨리 죽도록 할거라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엄마의 설득은 아빠가 말을 더 하게 만들 뿐이었고, 몇 마디의 말조차 아빠에게 힘들다는 것을 아는 엄마는 병원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를 그만뒀다.
8. 아마도 자식들보다 더 자주 오고 있는 것 같은 고모들 중 셋째 고모가 오늘도 왔다. 고모는 '너희 아빠 어쩌냐'하면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한다. 눈에 벌써 차오른 눈물과 내 팔을 꼭 잡은 손이 있을 뿐이다.
침상 정리가 끝나고 엄마가 불러서 다시 병실에 들어갔을 때, 아빠는 우리에게 가라고 말했다. "얼굴 봤으니 됐어, 가, " 하고 온 힘을 내서 웃어준다. 움푹 파인 뼈 위에 남아있는 가죽이 미소 짓기 위해 잔뜩 주름진다. 아빠는 평소에도 환하게 웃는 사람인데, 살이 빠져도 환한 미소는 그대로다. 여기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빠 당신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아빠는 평소보다도 더 환한 미소로 우리에게 인사해 줬다. 다시 혼자 남아서 전쟁을 할 엄마는 우리를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빠는 미소 짓고, 엄마는 울고, 신랑이 옆에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아마 '평생'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지금 이 장면을 잊을 수 없겠구나.'생각했다.
9. 엄마는 잠시 복도까지 배웅을 나왔다. 엄마도 못 자고 제대로 못 먹을 텐데, 아빠가 서운해할까 봐 엄마한테는 잘 잤는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아빠가 아닌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보통 너네 아빠가 몸이 안 좋으면 나 먼저라도 밥을 먹으라고, 심지어 화가 났을 때도 밥 먹으라는 얘기는 꼭 하는데, 어제는 아빠가 얼마나 아픈지 엄마 밥 먹으란 소리도 잊었더라' 그런 상황이니 두고 어딜 갈 수 없어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한다. 내가 걱정을 하니 사람들이 주고 간 빵이나 음료를 먹었다고 하지만, 아빠의 중병 앞에 엄마의 건강도 걱정이다.
엄마도 이제 얼른 가라고 한다. 엄마와 포옹을 한다. 대학 이후로 타지생활을 했으니 집을 떠날 때마다 이별이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어느 때보다 강하게 끌어안는다. 안고 울었다.
10. 병원을 나와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캠핑을 가야 한다. 신랑이 요즘 전주를 오가느라 바빴으니, 그리고 이제 이 캠핑 이후로는 한동안 캠핑을 갈 수 없으니 소중한 기회다. 하지만 영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 신랑은 늘 그랬듯 똑같은 말을 해준다. '가을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리는 캠핑대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고기를 먹으러 갔다.
술을 많이 마셔서 고기가 맛있었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았는다. 식당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많이 울고 나왔다.